지난 3일 아프리카돼지열병과의 전쟁 최전선 강원 화천군 사내면의 야산에서 화천군 소속 아프리카돼지열병 현장 대응팀이 야생 멧돼지 처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포획틀이나 트랩으로 잡힌 멧돼지는 발견 즉시 주변을 소독한 뒤
살처분하고 사체도 소독한 뒤 곧바로 매장한다.

치사율 100%, 감염이 곧 폐사로 이어지는 무서운 바이러스가 2018년 8월 중국 랴오닝성에서 검출됐다. 그로부터 4개월 만에 바이러스는 중국 전역으로 퍼졌고 아시아를 넘어 확산일로를 걸었다.

일명 ‘돼지 흑사병’으로도 불리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여러모로 닮았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는 것도, 한반도를 피해 가지 않은 것도 비슷하다. 지난해 9월 17일 경기 파주에서 국내 첫 감염 사례가 확인됐다.

코로나19의 확산세는 정부와 국민이 한뜻으로 맞선 덕분에 크게 둔화했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여전히 확산 중이다. 지난 3일 돼지열병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한창인 강원 화천군 사내면을 찾았다. 야산을 한참 오르자 포획틀에 갇힌 야생 멧돼지가 몸부림을 쳤다.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화천군 소속 현장대응팀은 곧바로 방호복으로 갈아입고 포획틀 주변에 소독약을 뿌렸다. 멧돼지가 돼지열병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처리팀은 소독 작업 직후 멧돼지를 사살했고,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사체의 심장 부근에서 바이러스 혈액을 채취했다. 그리고는 멧돼지의 사체와 주변에 생석회 가루를 뿌려 재차 소독했다. 멧돼지의 사체는 비닐에 싸인 채 매장됐다. ‘표준행동지침’에 따른 이 모든 과정이 완료되는 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처리 속도가 빠를수록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은 낮아진다. 다음날 국립환경과학원의 검체 확인 결과 이날 살처분된 멧돼지에선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

◇사육 돼지로의 확산은 잡았지만

바이러스의 생존력이 강하고 전염력도 높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초기 방역 당국은 물론 국내 양돈 농가들은 공포에 떨었다. 국내 사육 돼지는 총 1,100여만마리로 산업 규모만 8조원에 달한다. 2010부터 이듬해까지 350만마리 이상의 소와 돼지를 살처분해야 했던 ‘구제역 잔혹사’의 기억이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방역 당국은 지난해 최초 확진과 동시에 위기경보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바이러스가 검출된 강화군ㆍ파주시ㆍ김포시ㆍ연천군 내 모든 사육 돼지 14만5,163마리를 살처분했고 그 외 지역도 살처분 기준을 발생 농가로부터 반경 500m에서 3㎞로 확대했다. 강도 높은 대응 덕분에 지난해 10월 9일 연천 농가를 마지막으로 사육 돼지에서는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고 있다.

야생 멧돼지에서 지속적으로 바이러스가 검출되자 방역당국은 멧돼지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 울타리를 2중, 3중으로 설치했다. 사진은 경기 북부인 파주 연천 포천 지역과 강원 북부인 춘천 화천 양구 지역에 설치된 광역 울타리 모습을 각각 촬영한 뒤 이어 붙인 모습.
환경부 관계자가 강원 화천에 설치된 광역울타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광역울타리의 점검은 설치 위치와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지역 주민이 맡는다. 3일 오후 강원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이장인 설재근(68)씨가 마을에 설치된 울타리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바이러스 ‘숙주’ 멧돼지의 이동을 막아라

문제는 야생 멧돼지다. 22일 기준 총 550건의 국내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 검출 사례 중 올해 들어 검출된 495건이 모두 야생 멧돼지로부터 발생했다. 최근엔 강원 고성에서 발견된 멧돼지 폐사체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등 접경 지역 내 확산이 확인되기도 했다. 그에 따라 방역 당국은 국토를 횡단하는 울타리를 촘촘하게 설치해 바이러스의 남하를 막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울타리 설치 작업은 3단계에 걸쳐 이루어졌다. ‘야생 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대책 강화방안’에 따라 11월 중순 경기 파주에서 강원 철원까지 200km 구간에 걸쳐 1단계 광역 울타리를 완공했고, 2단계로 강원 화천에서 고성까지 115km 구간에 대해 지난해 12월 울타리 설치를 마쳤다. 3단계인 춘천댐에서 양구 112km 구간도 지난달 설치를 완료했다.

절벽이나 하천 등 자연 차단 효과가 있는 지역에도 추가로 울타리를 세웠다. 김의경 국립공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울타리 설치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에 성공한 체코와 독일이 시행했던 정책으로 야생 멧돼지 이동을 차단하는 효과가 입증됐다”며 “일반적인 멧돼지의 연간 활동 범위는 4~5㎢ 정도인데, 바이러스가 검출되면 필요에 따라 활동 반경 바깥쪽으로 울타리를 추가 설치하는 방식으로 확산을 막고 있다”고 밝혔다.

3일 오후 강원 화천의 야산에서 폐사체 수색팀이 수색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수색 작업을 마친 수색팀이 신발을 소독하고 있다.
◇개체수 줄이기가 관건

멧돼지는 천적이 없어 매년 개체 수가 급증한다. 개체 수 증가는 곧 활동 영역의 확대를 뜻한다. 그만큼 바이러스의 전파 가능성도 높아지는 셈.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는 울타리 설치와 더불어 야생 멧돼지를 포획해 개체 수를 줄이는 작업에 돌입했다.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검출 여부에 따라 포획 방식도 달라진다. 바이러스가 검출된 지역에선 포획틀과 트랩 등으로, 검출되지 않은 지역에선 총기를 이용한 포획을 허용하는 식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총기 포획을 허용하면 멧돼지가 도망가면서 활동 반경이 인위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원 화천군에 사는 이명기(68)씨는 “양돈 농가뿐만 아니라 일반 농가도 멧돼지로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이번 계기로 아예 박멸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이동진 문소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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