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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 취향] ‘미운털’ 양녕이 감 쪼아 먹는 새들 쏴 맞추자…

입력
2020.04.04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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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왕실이라 하면 치열한 궁중암투만 떠올리시나요. 조선의 왕과 왕비 등도 여러분처럼 각자의 취향에 따라 한 곳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사들이 그간 쉽게 접하지 못했던 왕실 인물들의 취미와 관심거리, 이를 둘러싼 역사적 비화를 ‘한국일보’에 격주 토요일마다 소개합니다. 

 <15> 왕실의 감 사랑 

서울 창덕궁 낙선재 후원의 감나무.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머무른 수강궁 옛 터에 헌종이 마련했다. 사진작가 서헌강
서울 창덕궁 낙선재 후원의 감나무.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머무른 수강궁 옛 터에 헌종이 마련했다. 사진작가 서헌강

“홍시입니다. (중략) 예? 저는, 제 입에서, 고기를 씹을 때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 (드라마’대장금’ 제5회 중)

이 대사는 전 세계에 한류 돌풍을 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한 드라마 ‘대장금’에서 정 상궁이 수라간 최고상궁으로 온 날 어린 장금을 만나는 장면에 등장하는 것으로,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은 사람도 모두 알 정도로 유명하다. 어린 장금의 절대 미각을 보여주는 이 대사 뒤에 홍시의 효능에 대한 정 상궁의 대사가 이어진다. 정 상궁은 홍시는 환절기에 고뿔을 예방하는 데 좋고, 숙취에 그만인데 어제 전하께서 술을 드셨길래 조금 넣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홍시(紅枾)는 연시(軟枾)이다. 홍시는 붉은 색깔에서 유래된 이름이고, 연시는 질감이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감은 나무에 달린 채로 떫은 맛이 사라지면 단감이고, 그렇지 않으면 떫은 감이 된다.

단감은 그냥 먹어도 되지만, 떫은 감은 타닌(tannin)이 있어 맛이 쓰고 ‘본초강목’에 따르면 복통을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그냥 먹기는 어렵다. 그래서 껍질을 벗겨 말려 곶감을 만들거나, 항아리에 짚을 깔아 익혀 말랑한 홍시를 만들어 먹었으며, 인위적으로 쓴맛을 제거하기도 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석회수 혹은 메밀 짚을 태운 잿가루를 준비해 물에 희석한 뒤 걸러낸 즙에 떫은 감을 2,3일간 담가두라고 하였고, ‘시의전서’에서는 감을 항아리에 넣고 감잎을 위에 많이 덮은 다음 따뜻한 물을 붓고 항아리를 이불로 싸서 두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하면 쓴맛이 사라진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경기 먹감나무 이층장. 감나무는 재질이 고르고 단단한 편이라 가구나 소품을 만드는 데에도 많이 쓰인다. 감나무의 타닌은 시간이 지나면 나무 속에 침착돼 검은 무늬를 남긴다. 먹감은 특히나 무늬가 아름다워 가구 제작에 더 알맞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경기 먹감나무 이층장. 감나무는 재질이 고르고 단단한 편이라 가구나 소품을 만드는 데에도 많이 쓰인다. 감나무의 타닌은 시간이 지나면 나무 속에 침착돼 검은 무늬를 남긴다. 먹감은 특히나 무늬가 아름다워 가구 제작에 더 알맞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감나무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자라나게 되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다만 ‘고려사’에 1313년(충선왕 5년) 승려 효가(曉可)가 감을 먹었다는 기록이 실린 것으로 보아 그 전부터 재배한 것 같다. 그러나 따뜻한 지방의 양지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북부 지방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재배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일까. 추운 지방에서 태어나 자란 태종 이방원은 감나무를 신기해하고 좋아했던 것 같다. 태종은 1367년(공민왕 16년) 북쪽의 함흥부 귀주에 있는 이성계의 사저에서 출생했다.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에 태종이 얼마나 감나무를 좋아했는지 알 수 있는 내용이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태종이 궁중에 감나무를 심고 항상 그 열매를 감상했는데, 새가 항상 쪼아 먹는 게 못마땅했다. 그래서 활을 잘 쏘는 사람을 구해 새를 쏘도록 했다. 이 때 좌우에서 말하기를 “조정에 있는 무사(武士)로 합당한 자가 없는데, 오직 세자라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태종이 세자에게 명하여 쏘도록 하니 계속 잘 맞혀, 좌우에서 모두 경하하고 태종도 세자의 행실을 늘 미워해 오래 보지 않다가 이날 비로소 흐뭇해하며 웃었다고 한다.

태종의 장자인 양녕은 10세 때인 1404년(태종 4년) 다음 왕위를 이을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유교적 교육과 엄격한 궁중 법도 등을 견디지 못했다. 나아가 사냥을 일삼으며 여색을 탐해 아버지인 태종과 갈등 관계에 있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감나무에 생긴 문제를 아들이 해결한 덕분에 이러한 부자 사이의 반목이 풀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감나무만으로는 부자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훗날 결국 양녕은 폐세자 되고 셋째 아들인 충녕이 세자로 책봉되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 중인 생갑. 목판에 흑칠, 44.6(가로)×31.1(세로)×9(높이)㎝. '경모궁의궤'에 따르면 천신(조선 왕실에서 때에 맞춰 나는 과일이나 곡식을 조상의 혼에게 올리는 일)할 때 홍시는 생갑에 담는다고 한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 중인 생갑. 목판에 흑칠, 44.6(가로)×31.1(세로)×9(높이)㎝. '경모궁의궤'에 따르면 천신(조선 왕실에서 때에 맞춰 나는 과일이나 곡식을 조상의 혼에게 올리는 일)할 때 홍시는 생갑에 담는다고 한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추운 지역 사람들이 감을 좋아했던 것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의 중국 동북 지역에서 일어난 후금(後金)에서도 그러했다. ‘인조실록’에 보면 호차(胡差)들이 누차 홍시를 요구하였다는 내용이 보이는데, 해마다 홍시를 3만개나 요구할 정도였다고 한다.

감나무가 자라기 어려운 추운 지역에 살면서 달콤한 홍시의 맛을 한번 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물렁물렁한 홍시를 어떻게 포장해 그 먼 길을 운반했는지 모르겠지만 조선에서는 이후에도 사신을 통해 홍시를 계속 보내주었다.

이렇게 많은 양의 홍시를 계속 보내주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고욤나무와의 접목을 통해 수확량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고욤나무는 추위에 강하며 열매가 많이 맺히지만 그 크기가 작아 먹기에 어려움이 있고, 감나무는 추위에 약하며 열매를 많이 맺지는 못하지만 과육이 크다. 그러므로 두 나무의 장단점을 잘 살려 접목을 하였을 경우, 추위에도 잘 견디고 큰 과육의 실과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기록에서 찾아지는 가장 오래된 접목은 1412년(태종 12년)의 배나무 접목이지만, 실제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접목은 경북 상주 외남면 소은리에 있는 감나무 접목이다. 성종 때 접목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감나무는 고욤나무와 접목하였으며 지금도 많은 양의 감을 맺고 있다. 그러나 태종이 궁중에 심고 감상한 감나무가 고욤나무와 접목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용재총화’의 기록은 태종과 양녕의 갈등이 심해지기 이전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공공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한제국 황실 오찬의 식단. 1905년, 종이, 15.2(가로)×20.3(세로)㎝. 1905년 9월 20일 당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의 딸 앨리스 일행이 방한해 고종 황제를 폐현하고 참석한 오찬의 식단이다. 홍시(메뉴 하단 왼쪽 네 번째)가 실과 그대로 올려졌음이 확인된다. 미국 뉴욕공공도서관 소장
미국 뉴욕공공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한제국 황실 오찬의 식단. 1905년, 종이, 15.2(가로)×20.3(세로)㎝. 1905년 9월 20일 당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의 딸 앨리스 일행이 방한해 고종 황제를 폐현하고 참석한 오찬의 식단이다. 홍시(메뉴 하단 왼쪽 네 번째)가 실과 그대로 올려졌음이 확인된다. 미국 뉴욕공공도서관 소장

왕실에서는 감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였다. 조선 왕실에서는 때에 맞춰 나는 과일이나 곡식을 조상의 혼에게 올렸는데, 이를 천신(薦新)이라고 한다. 감나무는 보통 5월경에 황백색으로 꽃이 피며 6월 무렵 열매가 달리기 시작해 8월 즈음부터는 붉게 익어가는데 ‘종묘의궤’에 보면 8월에는 홍시를, 10월에는 건시(乾枾ㆍ곶감)를 올리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감은 왕실에서 일상식이나 행사 음식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는데, 기본적으로 단맛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식보다는 후식에 사용되었다. 홍시나 준시(蹲枾ㆍ곶감과 달리 꼬챙이에 꿰지 않고 납작하게 눌러 말린 감)처럼 실과 그대로 올려지기도 하고, 잡과병 같은 병과의 재료로 들어가기도 하고, 수정과 같은 음청류에 사용되기도 했다.

감은 곶감으로 만들어 두면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약용으로도 쓸 수 있어 더욱 그러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곶감은 몸의 허함을 보하고 위장을 든든하게 하여 체한 것을 없애준다고 하였으며, 곶감이 마르는 과정에서 물기가 빠져나가며 단맛이 농축되어 표면에 남게 되는 과당이나 포도당의 하얀 결정체는 기침을 진정시키고 담(痰)을 제거하는데 효과적이었다.

또한 홍시는 갈증을 멈추게 하며 식욕이 나게 하고 술독과 열독을 풀어준다고도 했다. 민간에서는 고혈압을 치료하는 데 사용하였으며 감이 설사를 멎게 한다고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타닌이 강한 수렴(收斂) 작용을 하여 장의 점막을 수축시켜 설사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납작하게 눌러 말린 감인 준시. 준시는 백시(白枾)라고도 부른다. '조선 왕실의 밥상'(2018ㆍ푸른역사)에 삽입된 그림이다. ⓒ정혜경
납작하게 눌러 말린 감인 준시. 준시는 백시(白枾)라고도 부른다. '조선 왕실의 밥상'(2018ㆍ푸른역사)에 삽입된 그림이다. ⓒ정혜경

그러나 아무리 맛 좋고 건강에도 좋은 감이라 할지라도, 다른 음식과 함께 먹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의방유취’에 따르면 술과 같이 먹을 경우 피를 토하게 만들기 때문에 안 된다고 기록되어 있고, ‘본초강목’에 따르면 게와 함께 먹을 경우 복통이 일어나고 설사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감과 게가 모두 찬 음식이어서 그런 것인데, 이 때문에 경종에게 게장과 생감을 같이 먹으라고 권유한 사람이 이복 동생 영조였다는 소문이 돌아 결국 영조가 경종을 독살하였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최나래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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