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알려진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는 지금까지 알려진 수만해도 80명이 넘습니다. 관련 수사가 진행될수록 그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지만, 피해자가 직접 이를 신고하거나 주변에 알린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피해를 입은 이들은 대부분 신고할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 보통인데요.

성착취 피해 청소년을 보호ㆍ지원하는 ‘십대여성인권센터’의 조진경 대표를 만나 그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디지털 성착취 피해를 입는 피해자는 아동ㆍ청소년이 가장 많다는데요. 조 대표는 “(성착취를 당한 아이들은) ‘사진을 지워주세요’라고 하지 ‘성범죄자를 신고하고 싶어요’ 같은 문의는 많지 않다”라면서 “그게 바로 현행법의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현행법으로는 협박에 의한 성범죄 피해자가 자칫 ‘성매매’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건데요. 조 대표는 “한국사회에서는 강요, 강제, 극심한 폭행 등만 협박으로 보기 때문에 온라인 상의 범죄를 신고하면 자발적인지 아니면 강제적인지를 먼저 따진다”며 “아동ㆍ청소년한테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법이 규정돼 있다”고 했습니다. “‘신고해봐, 너도 처벌 받아’ (라는 협박에) 아이들은 두려움을 느낀다”는 거죠.

조 대표는 이에 ‘성매매’ 대신 ‘성착취’란 단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아동ㆍ청소년과 성인이 대등한 지위가 아닌데 어떻게 매매계약을 맺겠다고 얘기를 하느냐”며 “무조건 성인 책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에서도 18세 미만 모든 아동에 대한 성매매는 성착취라고 밝히고 있어요. 영국이나 유럽연합(EU)에서도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있죠.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18세 미만 모든 아동을 ‘피해자’로 명시, 보호처분 대신 전문적 치료와 교육을 제공하는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련 법률 개정안은 2018년 2월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넘었으나, 이날까지 법제사법위원회에는 상정되지 못했습니다. 조 대표는 이 같은 국회의 직무유기에 “지금 (n번방) 관전자들하고 뭐가 다른가”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여성대상 범죄에서의 ‘순수한 피해자’라는 그릇된 관념을 깨야 한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조 대표는 “무슨 짓을 했든지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는 나이”라며 “타이르고 왜 그랬는지 묻고, 이렇게 가르쳐 주는 게 우리 사회의 몫”이라고 했는데요. 그는 “성숙한 사회는 아이들을 탓하지 않아요. 가장 천박하고 미천하고 비겁한 사회가 애들한테 책임을 돌리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한설이 PD ssoll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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