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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억울함을 풀어야 눈을 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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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억울함을 풀어야 눈을 감죠”

입력
2020.04.01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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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 김광우 회장 

20일 김광우 제주4ㆍ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이 제주 제주시 자택에서 4ㆍ3 당시 행방불명된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형사사건부 사본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영헌 기자.
20일 김광우 제주4ㆍ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이 제주 제주시 자택에서 4ㆍ3 당시 행방불명된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형사사건부 사본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영헌 기자.

“4살 때였죠. 아버지가 아무런 이유 없이 군인에게 끌려간 이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몰라요. 평생을 빨갱이 자식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왔습니다. 더 늦기 전에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야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주4.3사건 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고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끌려간 이후 행방불명된 희생자 유족들로 구성된 제주4ㆍ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 김광우(75) 회장은 31일 오랜 시간 가슴 속에 담아 뒀던 사연을 하나 둘 털어놓았다.

김 회장은 “농사만 짓던 27세의 아버지가 잡혀간 뒤 아무런 소식도 없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전주형무소에 함께 끌려갔던 분을 통해 편지 1장을 받았다”며 “어머니가 형무소로 답장을 보냈는데 얼마 되지 않아 한국전쟁이 터졌고 아예 소식이 끊겼다”고 토로했다. 김 회장은 “아버지를 비롯해 형무소에 수용됐던 600여명이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산으로 끌려가 총살당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몇 십 년이 지나서야 들었을 뿐”이라며 “지금도 정확히 무슨 이유로 끌려갔고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유해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모른다”고 무겁게 말했다.

김 회장은 너무 어릴 적에 헤어져 아버지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그 흔한 사진 한 장조차 없다고 했다. 군인들이 집도 불태워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연좌제라는 굴레로 오랜 시간 정부 감시를 받아서 평생 억울한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 회장을 비롯해 행방불명수형인 유족 339명은 4ㆍ3 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지난 2월 18일 제주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직계가족이 남아있지 않은 행불수형인인 경우 재심 청구조차 못한 상황이다.

정부가 발표한 제주4ㆍ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4ㆍ3 당시 제주도민들을 대상으로 한 군법회의는 1948년 12월과 1949년 7월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됐다. 정부기록보존소가 소장한 ‘군법회의 명령’ 자료에는 2,530명의 피고인 명단이 남아있다. 군법회의 대상자들은 서울, 인천, 대전, 대구, 전주, 목포 등 전국 형무소에 분산 수감됐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상당수는 집단학살 당했으며, 일부는 행방불명됐다. 행불수형인은 대부분 1947∼49년 내란죄 등의 누명을 쓰고 징역 1년에서 최대 사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전주형무소의 경우 10대 여성들도 상당수 포함됐고, 1~2년 징역형을 받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며 “그런데도 한 두명도 아니고 몇백명을 한꺼번에 죽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국가 공권력이 잘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며 “보상은 둘째 치더라도 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억울함을 풀어줘야 하는 게 유족들에게 국가가 해 최소한의 도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를 비롯한 유족들이 대부분 70, 80대 노인들이고 이미 많은 유족들이 원통함을 가슴에 품고 돌아가셨어요. 지난해 6월 유족 10명이 먼저 재심을 청구했지만 아직도 재심개시 결정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법원은 청구인들이 살아있을 때 결론을 볼 수 있도록 빠른 진행에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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