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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진 교수의 마음거울] 바이러스를 대하는 마음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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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진 교수의 마음거울] 바이러스를 대하는 마음의 자세

입력
2020.03.23 19: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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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대구동산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를 돌보고 있는 의료진이 마스크와 고글 자국 방지를 위해 얼굴에 반창고를 붙였다. 뉴시스
대구동산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를 돌보고 있는 의료진이 마스크와 고글 자국 방지를 위해 얼굴에 반창고를 붙였다. 뉴시스

전 세계적으로 공포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그 정체와 치료법이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일상적인 일이 중단되고 가까운 사람과의 접촉도 제한되고 있다. 이 재난 시대를 평정심을 갖고 잘 건너는 것은 개인 역량의 범위를 이미 넘어섰다. 국가의 역량이 중요한 시점이다.

국가트라우마센터ㆍ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에서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을 위한 심리지원 지침서를 배포하였는데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새롭고 통제 불가능하며 파괴적인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것에 대해서 그 위험을 실제보다 더 크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현재의 불확실함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불확실성은 불안, 불면, 두려움, 비난 등 다양한 반응들을 가져오고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이다. 신체적인 회복보다 정신적인 회복이 더욱 오래 걸리므로 필요한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한다. 정확한 정보를 필요한 만큼만 얻어야 한다. 불확실한 정보는 오히려 불안과 스트레스를 가중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어렵게 한다.

몸과 마음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괴롭고, 마음이 힘들면 없던 몸의 병도 생긴다. 그동안 커다란 국가적 재난들을 겪으면서 심리적 지원 체계가 조금씩 틀이 잡혀 가고 있다. 이번 감염병 재난에도 심리적 트라우마 치료가 조기 발동했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요즘 코로나 사태로 일반 대중도 바이러스에 감염됨과 동시에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경험하게 되었다. 낙인은 병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과 병에 대한 편견, 그리고 차별적 행동에서 나온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이러한 낙인을 이미 오랜 기간 겪어 왔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병 자체뿐 아니라 부정적 사회 경험으로 인해 우울감, 자존감 저하, 사회적 고립을 강화시키고 병을 더 극복할 수 없게 만든다. 신체 질병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도 초기에 빨리 치료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낙인으로 인해 병원에 오는 것을 꺼리게 된다. 조기 치료가 늦어짐으로써 생기는 개인적 피해뿐 아니라 국가 경제적 손실도 막대하다.

평생 아무런 몸의 질병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런 정신적 문제 없이 평생 사는 사람도 없다. 다만 그 정도와 지속 기간이 다를 뿐이다. 누구나 낙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병을 이해해 주지 못하거나 왜곡해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안타깝게도 아직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지만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혈당을 측정하는 것처럼 쉽게 검사할 수 있다면 아마도 정신질환의 치료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바이러스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증상으로 본인의 존재를 알릴 뿐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보통 사람이 하루 아침에 사회의 낙오자와 위험 인물로 도태되는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요즘 변신의 주인공처럼 하루 아침에 벌레로 둔갑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불안한 상황에서는 불신과 혐오가 기승을 부린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직격탄을 맞은 대구 시민들의 대처는 오히려 국민에게 매우 고무적이다. 정신적 공황도 폭동도 없이 그저 묵묵히 서로를 격려하며 재난을 이겨 내고 있다. 자아존중감, 즉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을 소중히 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외부의 풍랑에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여 부정적이거나 적대적인 사람들에게 휘둘리거나 강한 사람들에게 의존적이 되지 않는다.

사춘기의 방황을 통해 개인은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고 재난을 통해 사회는 변화하고 성숙한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또 어느 사회에나 주어진다. 다만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를 뿐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고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김정진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정진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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