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팔루 재건 현장
※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지난달 25일 주민들은 마을이 사라진 마을 어귀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다섯 살 소녀는 꽃을 들고 있었다. 가구당 17㎡의 임시 대피소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마을 초입은 도로가 여러 군데 끊겨 걸어 들어가야 했다. 중부술라웨시주(州) 팔루 외곽의 페토보 마을은 2018년 9월 28일 오후 6시12분, 규모 7.4의 강진으로 땅속 토양이 지하수와 섞여 액체(반고체)처럼 녹아 내려 움직이는 ‘액화 현상’으로 4m 가까이 땅이 꺼지면서 건물들이 뒤집히고 모두 땅 밑으로 잠겼다.
이자위(38)씨는 늪처럼 변한 땅에 파묻혀 있다가 밤늦게 구조됐다. 그는 “얼굴이 땅 위로 나와 있어서 겨우 발견됐지만 엄마와 아이는 땅 밑으로 가라앉았다”고 했다. 당시 땅속에서 밤새 “살려달라”는 절규가 들렸으나 구하지 못하고 결국 잠잠해졌다. 기자가 방문한 이틀 전에도 백골이 된 시신을 수습했다고 한다. 1만3,000가구가 살던 빽빽한 마을이었다는 증언을 믿을 수 없을 만큼 폐허로 변해 있었다. 6,500여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페토보 마을에서 20분 거리인 발라로아도 액화 현상으로 마을 전체가 무덤으로 변했다. 그나마 폭격을 맞은 듯한 건물 잔해들이 무질서하게 기울어진 흔적은 남아 있었다. 5,000여명이 실종됐다. 취재에 동행한 자카르타포스트 기자 오찬(44)씨는 “땅이 뒤집힌 곳에 박힌 루룰(11)이라는 여자애를 꺼냈는데 양 다리가 잘려 나와 응급조치하고 20시간을 차로 달려 마카사르병원에 이송한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루룰의 엄마와 여동생은 살아오지 못했다.
강진 발생 3분 뒤 밀어닥친 쓰나미는 팔루의 렐레해변을 초토화했다. 도시의 명물로 꼽히던 물에 ‘떠 있는 이슬람사원’은 건물을 받치던 기둥이 무너져 파도가 넘실대는 흉물로 방치돼 있었다. 당시 해안 축제가 진행되고 있어서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도 다 파악이 되지 않았다. 공식 집계상 5,000여명 사망이라지만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주민등록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
팔루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톤도 지역엔 파란 지붕을 얹은 집들이 사방으로 길게 늘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중국계 기업이 이재민을 위해 집 2,000채를 짓고 있는 현장이다. 상수도 공사 등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올해 6월쯤 입주하면 이주민들은 임시 대피소보다 두 배 넓은 새 집(36㎡)을 얻게 된다. 36만 팔루 시민 중 4만명은 여전히 이재민이다. 그들 모두가 새 보금자리를 얻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도시 풍경과 각각의 낯빛은 평온해 보였다. 삶은 시나브로 계속된다.
술라웨시 팔루=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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