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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생충이 소환한 반지하 사람들

입력
2020.02.20 04:3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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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되고, 바퀴벌레와 곰팡이로 뒤덮여 있는 지하에서의 삶은 허구가 아닌 현실이다. 호흡기 질환과 피부과 질환은 지하 사람들에게 너무 흔한 질병이다. 사진은 영화 ‘기생충’의 기택네 집. 고양시 제공
침수되고, 바퀴벌레와 곰팡이로 뒤덮여 있는 지하에서의 삶은 허구가 아닌 현실이다. 호흡기 질환과 피부과 질환은 지하 사람들에게 너무 흔한 질병이다. 사진은 영화 ‘기생충’의 기택네 집. 고양시 제공

제인 폰다가 아카데미 작품상으로 기생충을 호명하는 순간은 지금도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영화가 그려낸 지하 공간이 사실적이라 더 그렇다. 기택 가족의 몸에서 나는 지하 ‘냄새’, 폭우로 인한 ‘침수’, 행인들이 방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생활 침해’는 지하 문제의 정곡을 찌른다. 기생충은 봉준호라는 우수한 연구자가 오랜 기간 연구해 쓴 지하와 빈부격차에 대한 ‘사회학 보고서’를 영화로 구현해 낸 작품이다.

참여정부 때인 2005년 통계청은 처음으로 지하(반지하 포함)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2005년 59만, 2010년 52만, 2015년 36만가구가 지하에 거주하고 있는데, 2015년 지하 거주 가구의 95.8%가 수도권에 살고 있다(서울 62.8%). 열악한 주거의 대명사인 지(하)ㆍ옥(탑)ㆍ고(시원) 중 지하에는 기택네처럼 가족 단위 거주가 많다. 옥탑과 고시원에 1인 가구가 많은 것과 대조적이다. 주거비가 높은 도시에 사는 가난한 가족의 최후의 보루인 지하를 기생충보다 더 잘 표현하기는 힘들 것이다.

영화에서 반지하보다 더 어두운 지하로 내려가는 무거운 문이 열리고 긴 계단이 이어지는 장면은 현기증이 날 만큼 강렬하다. 완벽하게 어두운 그 지하에는 기택네보다 더 가난한 ‘투명인간’이 살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지하 사람들을 호명했다. 초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강남구 대치동, 개포동에도 영화에서 그려지는 모습대로 지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침수되고, 바퀴벌레와 곰팡이로 뒤덮여 있는 지하에서의 삶은 허구가 아닌 현실이다. 한 시간 이상 냄새를 맡고 있으면, 머리가 아파지는 그곳에 아이들이 살고, 노인들이 살고, 청년들이, 중장년층이 살고 있다. 호흡기 질환과 피부과 질환은 지하 사람들에게 너무 흔한 질병이다.

우리 사회가 가진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지하 거주를 종식시켜야 한다. 마침 최근 정부는 주거복지 영역의 난제들에 대한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2019년 10월 아동의 주거권 보장과 고시원 등 비주택 거주 가구에 대한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거주자를 공공임대주택으로 빼내가서 영업이 힘들다’는 아우성이 고시원 운영자들에게서 터져 나올 정도로 가시적인 성과가 나고 있다. 올 1월에는 수십 년간 방치됐던 쪽방촌의 토지를 ‘수용’해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달에는 원룸촌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방쪼개기, 불법 펜션 등에 대한 규제 강화 계획도 발표했다.

통계청은 누가 어디에 얼마나 지하에 거주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지리정보체계(GIS) 기반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정확한 자료가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문제 해결을 위한 ‘계획이 이미 다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이 지하ㆍ옥탑, 쪽방 등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모든 형태의 주거 문제 해결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마지막 퍼즐이 되었으면 한다. 영화로 세계를 놀라게 한 데 이어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지하 문제의 빠른 해결로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차례이다. 봉준호라는 세계적인 거장 보유국에 걸맞은 국격을 보여줄 때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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