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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토(土), 200개의 복(福)…고령토 원산지는 바로 여기

입력
2020.02.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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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33> 장시성 ① 징더전과 야오리고진 

중국 동남부 내륙 장시성(江西省)은 안후이ㆍ후베이ㆍ후난ㆍ광둥ㆍ푸젠ㆍ저장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다른 성에 비해 낯설다. 당나라 시대 장강 남쪽인 강남을 동쪽과 서쪽으로 나눠 ‘강동’과 ‘강서’로 분리하기 시작했다. 장시로 들어서면 도시 이름이 오히려 익숙하다. 도자기로 유명한 징더전, 도교 명산 용호산을 품은 잉탄, 혁명근거지 징강산과 메이베이고촌이 있는 지안, 중화소비에트로 유명한 루이진으로 발품 기행을 떠난다.

세계 도자기의 수도로 불리는 장시성 징더전의 도계천 문화광장.
세계 도자기의 수도로 불리는 장시성 징더전의 도계천 문화광장.

상하이에서 징더전(景德鎭)까지는 고속철로 4시간이면 도착한다. 도자기로 유명한 도시가 많지만 중국의 자도(瓷都)는 징더전이다. 도자기의 수도다. 장시성 동북에 위치하며 중국에서 가장 넓은 담수호인 포양호와 가깝다. 장강과 연결돼 물류도 유리하다. 명청 시대부터 20세기 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4대 명진(名鎭)으로 불렸다. 도자기 덕분이다. 네 도시 중 포산ㆍ한커우ㆍ주산은 시로 승격되거나 편입되면서 ‘진(鎭)’이라는 꼬리표를 뗐다. 징더전만은 명칭 변경 없이 시로 남았다. 북송 진종 때 도자기를 조정에 헌납했다. 바닥에 ‘경덕연제(景德年制)’라고 새겼다. 황제 연호만 그냥 쓸 수 없었으리라.

도계천 문화광장에 보이는 ‘위성총’ 굴뚝.
도계천 문화광장에 보이는 ‘위성총’ 굴뚝.
도계천의 가마.
도계천의 가마.

도계천(陶溪川) 문화광장을 찾는다. 도자기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거리가 100m 이상 이어진다. 600년 역사를 지닌 도자기 생산지를 현대 감각으로 복원했다. 예술인지 상업인지 분간이 어려운 도자기가 망라돼 있다. 공장지대를 예술거리로 탈바꿈한 흔적이다. 벽돌로 쌓은 공장은 아름다운 도자기 진열장으로 손색이 없다.

도자기 굽던 흔적도 남겼다. 석탄 연기를 통풍하는 굴뚝이 남았다. 높이 45m에 이른다. 인공위성을 흠모했는지, 이름이 위성총(衛星囪)이다. 처음 설립된 도자기 공장 이름이 우주였다니 궁합이 어울린다. 1958년에 제작돼 약 60년 동안 사용했다. 당시 공업화에 대한 의지가 이름만큼이나 드높았나 보다. 가마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가마 주위에는 모두 가게가 들어섰다. 가마에서 방금 꺼낸 작품은 아니겠지만 분위기는 매우 리얼하다.

도계천의 도자기 전시 판매장.
도계천의 도자기 전시 판매장.
도자기로 만든 강아지.
도자기로 만든 강아지.

흙으로 구워 만들 수 있는 형태는 모두 있다. 찻잔과 주전자는 물도 예쁘게 담아야 할 듯한 자태다. 부드러운 곡선미를 드러낸 꽃병에는 생화가 어울린다. 애교와 유머가 깃든 동물도 많다. 강아지 두 마리가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머플러에 각각 ‘Cute’와 ‘發’이라 새겼다. ‘부자 된다’는 의미로 파차이(發財)라 적었다면 웃어야 한다. 그래서 혀를 내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도계천의 낙엽 찻잔.
도계천의 낙엽 찻잔.
도계천 문화광장 바닥의 징더전 지도.
도계천 문화광장 바닥의 징더전 지도.

바닥에 낙엽을 새긴 진갈색 찻잔은 하나에 120위안(약 2만원)이다. 꽤 비싼 편인데 주인은 끊임없이 주문 전화를 받는다. 인터넷에 공개했는지 문의가 많다. 소매도 가능하지만 대부분 도매로 판매한다. 징더전의 명성이라면 참신한 아이디어 제품 하나로 큰돈을 벌 수 있다. 전국에 신속 배달이 가능한 중국이다. 결제도 무지 편하다. 길바닥에 장시성 위치를 색칠한 지도가 있다. 징더전의 위치도 표시해 놓았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징더전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도자기를 만들려면 흙이 필요하다. 흙이라고 모두 도자기 원료가 되지는 않는다. 징더전에서 동북쪽 60km 떨어진 야오리고진(瑶里古鎭)에 고령촌(高嶺村)이 있다. 미세한 분말 점토가 물과 만나 부드러워지고 불과 만나 강해지는 흙이 바로 고령토다. 고령토는 고령촌 광산에서 나오는 흙을 말한다. 야오리고진이 도자기 발상지로 유명한 이유다. 버스를 타고 1시간30분이면 마을에 도착한다. 고령토 광산을 비롯해 고진 전체가 너무 넓다.

야오리고진 입구의 조형물.
야오리고진 입구의 조형물.

야릇하게 생긴 조형물이 입구에 세워져 있다. 위는 집처럼 보이고 아래는 사람이 서 있는 형상이다. ‘토(土)’ 자가 셋인 ‘장(壵)’ 자를 구현했다. 산세가 높고 웅장하다는 뜻이다. 옛 지명이 장리(壵里)였는데 ‘장’은 고대에 ‘요(堯)’와 같은 쓰임새였다. 요임금의 요는 높다는 뜻도 있다. 당나라 시대 도자기 생산지로 유명해지자 ‘가마마을’이라는 의미의 ‘요리(窯里)’가 됐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아름답다’는 뜻으로 야오리(瑶里)로 바뀐다. 마을의 근본을 생각하게 만든 모양이다. 위와 아래를 도자기가 연결하고 다리 셋은 안정감을 준다. 마을 상징물로 간명하면서도 풍부한 이야기를 담았다. 볼수록 정이 붙는다.

한 노인이 유모차를 밀며 야오리고진 골목을 이동하고 있다.
한 노인이 유모차를 밀며 야오리고진 골목을 이동하고 있다.
야오리고진의 도자기 가게.
야오리고진의 도자기 가게.
찻잔을 벽에 세로로 붙여 놓은 모습이 눈길을 끈다.
찻잔을 벽에 세로로 붙여 놓은 모습이 눈길을 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는 반질반질한 석판이 깔려 있다. 바닥부터 푸른 이끼가 담장을 타고 오르고 할머니가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걸어오고 있다. 풋풋한 골목을 따라 가니 주민센터가 나오고 도랑이 흐른다. 도랑 따라 공방이 몇 군데 문을 열었다. 도자기 빚는 체험도 가능하고 판매도 한다. 벽에 세로로 붙인 찻잔이 눈길을 끈다. 10~20위안 정도로 싸다. 도랑 따라 오르다가 다리를 건넌다. 잔잔한 도랑에 녹음이 하강하고 분칠 담장과 검은 기와로 꾸민 집도 살포시 담긴다. 한가하고 정겨운 풍경이다. 진사제 대문이 굳게 닫혔다. 저택이 수면 아래에 비치니 붉은 대련과 문신도 따라온다.

야오리고진의 정씨종사.
야오리고진의 정씨종사.
야오리고진 박물관에 전시된 고령토.
야오리고진 박물관에 전시된 고령토.
야오리고진 박물관에 전시된 청나라 시대의 호자.
야오리고진 박물관에 전시된 청나라 시대의 호자.

도랑 옆에 위치한 정씨종사(程氏宗祠)도 슬쩍 반영 대열에 들어선다. 종사는 조당과 부속 건물로 이뤄져 있다. 건물 하나는 야오리박물관이다. 고령토 원석이 있다. 부서지고 가루가 되고 다시 예술이자 실용으로 탄생한다니 인간이 만든 지혜는 곧 역사다. 깨진 사발인 완저(碗底)는 무려 송나라 때 물건이다. 출토된 도자기가 시대별로 나뉘었다. 원나라 절요판(折腰盘), 송나라 도호(陶壺), 명나라 화병(花瓶), 청나라 호자(虎子), 민국 필통(筆筒)을 차례로 감상한다. 호자는 이름을 들어도 사진을 봐도 설명이 필요하다. 호랑이가 아니라 요강이다.

야오리고진 박물관 문혁자. 중국 문화혁명 시기 사회상을 표현한 도자기다.
야오리고진 박물관 문혁자. 중국 문화혁명 시기 사회상을 표현한 도자기다.
야오리고진 박물관에 전시된 오공. 제기의 일종이다.
야오리고진 박물관에 전시된 오공. 제기의 일종이다.

문화대혁명 시기를 보여주는 문혁자(文革瓷) 앞에 발을 멈춘다. ‘자산계급’을 향해 칼을 들고 ‘악패지주 류원차이(민국 시기 사천 지방의 대지주이자 상인)’에 붉은 엑스(X) 표시를 하고 ‘반동학술권위’를 심판하는 형상의 도자기다. 지주 부인은 목이 달아났다. 섬찟하다. 이성을 잃은 시대에도 도자기는 계속 만들어졌다. 이 정도면 고고한 유물이 아니라 혁명에 복종한 무기다. 문혁자도 세월이 더 많이 흘러 언젠가는 아픈 유물이 되리라. 이미 가슴이 조금 짜릿하다. 청나라 시대에 만든 오공(五供)도 있다. 제사를 위한 용기다. 가운데 향로를 중심으로 촛대와 화병 각 한 쌍이다. 옥이나 동, 주석이나 법랑 그리고 도자기로도 만든다. 향ㆍ꽃ㆍ등ㆍ물ㆍ과일이 제수된다.

야오리고진 기복당 벽면에 각기 다른 모양으로 ‘복(福)’ 자 문양을 새긴 도자기 작품이 걸려 있다.
야오리고진 기복당 벽면에 각기 다른 모양으로 ‘복(福)’ 자 문양을 새긴 도자기 작품이 걸려 있다.
야오리고진 기복당의 박쥐 문양 도자기 작품.
야오리고진 기복당의 박쥐 문양 도자기 작품.

조당인 기복당(祈福堂)으로 들어선다. 서로 다른 필체로 ‘복’ 자 100개를 썼다. 다른 벽에도 백복(百福)이 있으니 200복이다. 단 하나도 같은 글자가 없다. 야오리고진은 후이저우(徽州) 문화를 이어온 우위엔과 가깝다. 후이저우 건축이 지닌 특징으로 나무와 돌, 벽돌에 새긴 삼조(三雕) 예술을 꼽는다. 후이저우 상인은 복이 곧 돈이라는 생각에 투철하다. 복과 발음이 비슷한 편복(蝙蝠)은 박쥐다. 벽면을 박쥐 문양이 도배하고 있다. 명나라 중엽 처음 건축했으며 여러 번 보수를 거쳤다. 복을 비는 공간, 초심은 변하지 않았다.

운무가 걷히고 있는 야오리고진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다.
운무가 걷히고 있는 야오리고진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다.

판자 일곱 개로 연결한 다리를 지나 도랑을 건넌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불안하지만 앞만 보고 또박또박 밟는다. 수백 년 자란 나무는 다리를 거의 누를 듯 내려앉았다. 산에서 흐른 물은 잔잔하고 능선에서 불어오는 운무는 한 폭의 산수화다. 어김없이 물감과 화폭이 등장한다. 빨래하고 채소 씻는 소리만 들린다. 다리를 건너는 강아지는 가벼운 효과음이다. 그저 정지화면처럼 캔버스로 쏙 들어갈 만한 풍광이다.

오씨 저택인 야오리고진의 사강승람.
오씨 저택인 야오리고진의 사강승람.
섬세한 목조각으로 구성된 사강승람의 문살.
섬세한 목조각으로 구성된 사강승람의 문살.

야오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조가 있는 사강승람(獅岡勝覽)을 찾는다. 청나라 말기 해외로 진출해 성공한 상인 오씨가 지었다. 서양식 건축양식으로 외양을 갖춘 저택이다. 대문 편액은 바로 위 사자 한 쌍과 잘 어울린다. 시멘트와 철골로 구축하고 2층 창문 밖으로 테라스를 만들었다. 단단한 외벽이 세월에 낡았어도 집은 전형적인 조각예술을 담았다. 아주 부드러운 목조로 다양한 솜씨를 뽐내고 있다.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나무마다 온통 문양과 이야기를 조각해 마치 전시장 같다. 동공이 휘둥그레, 눈을 떼려야 뗄 수 없다.

사강승람 문살에도 박쥐 문양이 들어 있다.
사강승람 문살에도 박쥐 문양이 들어 있다.
삼국지의 한 장면을 새긴 사강승람의 목조각.
삼국지의 한 장면을 새긴 사강승람의 목조각.

병풍처럼 펼쳐진 방문을 갤러리로 가져간다면 곧바로 예술품이다. 직사각형 틀에 고전 소설이 자리 잡고 있다. 삼국지, 서유기, 봉신방, 수호지 등이다. 상인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박쥐는 문틈마다 붙어 있다. 꽃과 동전, 과일도 있지만 후다닥 복이 날아올 듯한 모양새다. 나무 조각인데도 살아움직이는 듯하다. 뚫린 공간에 심도가 깊어서다. 삼국지에서 관우와 황충이 결투하는 묘사는 너무 생생해 슬쩍 만져본다. 집 지키는 아주머니는 본체만체다. 이층으로 이어지는 지붕 쪽에 조각예술이 길게 펼쳐져 있다. 수호지 속 양산박 산채다. 그저 정지했다. 아마 소설 한 권이 뇌를 한바퀴 돌만큼 시간이 흘렀으리라.

야오리진의 천이구거. 중국 건국에 이바지한 천이 장군이 머문 저택이다.
야오리진의 천이구거. 중국 건국에 이바지한 천이 장군이 머문 저택이다.
야오리고진의 신사군 개편 기념비.
야오리고진의 신사군 개편 기념비.

천이구거(陳毅舊居) 팻말이 보인다. 중국 건국 당시 최고위급 장군을 10대 원수로 대우하는데, 그중 한 명인 천이 장군이 머문 저택이다. 공산당은 제2차 국공합작 이후 장강 남쪽 8개 성에서 활동하던 홍군유격대를 신사군(新四軍)으로 개편하고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준비했다. 국민당은 여전히 공산당 유격 활동을 방해하는 와중에 야오리에 온 천이는 정씨종사에서 항일투쟁대회를 조직했다. 신사군은 항전 승리 후 국민당과 내전을 거쳐 건국에 크게 기여했다. 도랑 건너에는 신사군 개편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투쟁 중에 사망한 야오리 출신 혁명열사가 묻혀 있다.

야오리고진 도자기의 사조로 추앙받는 조개(가운데)와 도공 조각상.
야오리고진 도자기의 사조로 추앙받는 조개(가운데)와 도공 조각상.

마을 광장에 도자기를 제작하는 조각상이 여럿 설치돼 있다. 고령토를 구하고 모양을 빚고 구워내는 모습이다. 도자기 발원지치고는 소규모다. 4세기경 동진 시대 야오리 출신 관리인 조개(趙慨)도 있다. 관직을 마치고 낙향 후 도자기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단순히 토기를 빚는 수준을 넘어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자기를 만들게 됐다. 조개는 도공의 우상이 됐고, 징더전 도자기의 사조(師祖)로 추앙받고 있다.

학생들이 야오리고진 풍경을 화폭에 담고 있다.
학생들이 야오리고진 풍경을 화폭에 담고 있다.
야오리고진의 고풍스런 거리 풍경.
야오리고진의 고풍스런 거리 풍경.

학생들이 도화지를 놓고 풍광을 담는다. 개 한 마리도 ‘안방 자세’로 앉아 있다. 사람이나 개 모두 시선은 한 방향이다. 붓칠은 솜씨나 색감에 따라, 생각과 눈매에 따라 달라지리라. 자연과 건축이 조화를 이룬 고진은 포근한 정서를 풍긴다. 도자기 마을이 품은 정서까지 담아내면 좋겠다. 감동은 굴뚝처럼 깊어야 한다. 불 온도를 맞춰 예술로 승화하듯 백지 위에 잘 녹여내면 좋겠다. 도랑 옆 골목을 따라 걷는다. 담장을 넘어온 꽃이 담백하다. 바닥에는 이끼, 벽돌 담장은 세월을 덧칠하고 있다.

야오리고진의 야경.
야오리고진의 야경.

대문 홍등이 서서히 불을 밝힌다. 빛이 여전히 남았길래 숙소 옥상으로 올라간다. 마을은 오후에 조금 내린 비로 촉촉하다. 조명이 켜지니 조금 분주하다. 바삐 집으로 가고 저녁 먹는 소리도 들린다. 그림 도구를 든 학생들도 재잘재잘 수다를 떨고 있으리라. 옆자리의 개를 화제 삼아 누군가는 여럿을 즐겁게 했으리라. 밤이 길면 이야기도 깊건만 도자기 굽던 마을은 그저 조용하다. 이글거리는 가마 속에서 도자기가 구워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야오리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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