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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ㆍ손숙 “우리는 ‘대학로 방탄노년단’, 들어는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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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ㆍ손숙 “우리는 ‘대학로 방탄노년단’, 들어는 봤나?”

입력
2020.02.10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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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손숙(왼쪽)과 신구가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네 번째 시즌을 무대에 올린다. 신시컴퍼니 제공
배우 손숙(왼쪽)과 신구가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네 번째 시즌을 무대에 올린다. 신시컴퍼니 제공

“우리는 이제 식구지, 식구.”(신구)

“아무렴요. 정말 좋은 동지예요. 지금껏 서로 얼굴 한번 붉혀 본 일이 없어요.”(손숙)

1970년대 초 국립극단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세월이 50년. 부부로 따지면 백년해로한 셈이니 “식구”란 말이 틀리지 않다. 시간 속에 쌓인 정 덕에 주고받는 대화가 오래 묵은 장맛처럼 깊고 달다.

배우 신구(84)와 손숙(76)이 또 만났다. 14일부터 내달 22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네 번째 시즌 무대다. 연극 ‘장수상회’와 ‘3월의 눈’에 이어 다시 부부로 호흡을 맞춘다. 신구는 간암으로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손숙은 가족을 위해 한평생 희생한 어머니를 연기한다. 지난달 31일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만난 두 배우는 “여러 번 공연해도 초연 때와 다르지 않은 감흥을 느낀다”며 “되도록 오래 참여하고 싶은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간성혼수로 정신이 흐릿한 아버지가 이웃의 목덜미를 잡고 소동을 일으키는 장면. 박형기 인턴기자
간성혼수로 정신이 흐릿한 아버지가 이웃의 목덜미를 잡고 소동을 일으키는 장면. 박형기 인턴기자
“누가 보면 저 양반하고 내가 금슬이 좋은 줄 알 거 아이가. 온갖 정 다 떨어진 지 언젠데. 그런데 마. 저 양반이 간다고 하이, 많이 불쌍하고 많이 아파.” 아픈 남편에 대해 회한을 털어놓는 손숙(왼쪽)의 독백 장면. 박형기 인턴기자
“누가 보면 저 양반하고 내가 금슬이 좋은 줄 알 거 아이가. 온갖 정 다 떨어진 지 언젠데. 그런데 마. 저 양반이 간다고 하이, 많이 불쌍하고 많이 아파.” 아픈 남편에 대해 회한을 털어놓는 손숙(왼쪽)의 독백 장면. 박형기 인턴기자

이날은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었다. 간성혼수로 정신이 흐릿한 아버지가 소동을 일으키고, 간호하던 둘째 아들(조달환)에게 어머니가 감춰둔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별을 준비하는 노부부의 애틋한 독백이 오갔다.

두 배우에게 이 작품의 의미는 남다르다. “요즘 ‘웰다잉’이란 말을 많이 하잖아요.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돼요.”(신구) “50대에 이런 역할을 맡았다면 이렇게까지는 공감하지 못했을 거예요. 나에게도 곧 닥쳐올 일이니까 이 작품이 더 특별하게 다가와요. 대사도 우리네 일상 같아서, 가끔은 연극이라는 걸 잊어 버리곤 해요.”(손숙)

2013년 초연 이후 세 차례 공연을 했는데도 무대에 서는 마음가짐은 늘 새롭다. 과거에 놓쳤던 행간의 의미를 새로 발견해서다. 손숙은 둘째 아들이 미국에서 잘나가는 큰 아들에게 전화해서 “아버지 곧 돌아가시는데 언제 올 거냐”며 화를 내는 장면을 떠올렸다. “제가 그 장면에서 둘째를 때리며 야단을 치는데, 사실은 둘째가 아니라 큰 아들을 원망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잘난 아들 둬서 뭐 하나, 어찌나 서운하고 섭섭하던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감정이에요.” 신구도 대사의 호흡과 장단음 표현 등을 매만졌다고 한다. “옛 노래와 옛 물건도 시간이 한참 지나서 대하면 새롭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 작품엔 그런 발견의 기쁨이 있죠.”

그래서 새 작품과 똑같은 공력이 들어간다. 신구는 첫 연습 때부터 대사를 완전히 외워 대본 없이 연기한다. 선배가 그러니 후배들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신구는 “직업이 배우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대본을 한 달 전에 받든 하루 전에 받든, 대본을 다 외우고 연습을 시작하는 게 오랫동안 습관으로 굳어졌어요. 대사를 빨리 외우면 숙성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어서 훨씬 좋아요.”

신구(왼쪽)와 손숙은 1970년대 초 국립극단에서 처음 만나 50년간 한 길을 걸었다. 가족끼리도 잘 알 만큼 가까운 사이다. 박형기 인턴기자
신구(왼쪽)와 손숙은 1970년대 초 국립극단에서 처음 만나 50년간 한 길을 걸었다. 가족끼리도 잘 알 만큼 가까운 사이다. 박형기 인턴기자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연습을 마친 뒤 휴식을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아들 역 조달환, 아버지 역 신구, 어머니 역 손숙, 며느리 역 이명경, 이웃 정씨 역 최명경. 박형기 인턴기자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연습을 마친 뒤 휴식을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아들 역 조달환, 아버지 역 신구, 어머니 역 손숙, 며느리 역 이명경, 이웃 정씨 역 최명경. 박형기 인턴기자

올해로 신구와 손숙의 연기 경력은 각각 58년과 57년, 합치면 115년에 달한다. 나이를 더하면 무려 160년이다. 그럼에도 단일 캐스트로, 날마다 무대에 오른다. 열정도, 체력도, 젊은 배우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작품은 매일 같아도, 관객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죠. 연극은 그런 매력이 있어요.”(손숙) “이젠 늙으니까 방송에서 안 불러 줘. 덕분에 좋아하는 연극을 실컷 하게 됐지.”(신구) “그거 아세요? ‘대학로 방탄노년단’이라고. 신구와 손숙, 거기에 이순재까지 멤버예요. 하하.”(손숙)

배우는 나이가 들수록 더 좋다고 했다. “본질로 깊이 들어가 즐길 수 있게 됐고”(손숙) “세상사를 바라보는 눈이 익어가는 느낌”(신구)을 받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연극을 오래 하기 위해 건강 관리에도 힘쓴다. 유명한 애주가인 신구는 왕성한 활동의 비결로 “술”을 꼽으며 “술 마시기 위해 운동한다”고 껄껄 웃었다.

카메라 앞에서, 또 무대 위에서, 숱한 인생을 빚어온 그들에게도 미답의 영역이 있을까. “저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쉬를 끝내 못 했어요.”(손숙) “젊은 시절부터 햄릿을 꿈꿨는데 내 모양새(외모)와는 거리가 좀 있어서… 하하.”(신구)

하지만 그들에겐 블랑쉬, 햄릿보다 절절한 노부부의 사랑이 있다. 이번 작품의 관전포인트를 꼽아 달라는 마지막 질문에도 자신감으로 답했다. “안 보면 자기들만 손해지, 뭐.”(신구) “아유, 명답이네요. 우리가 신구 선생님의 명연기를 언제 또 보겠어요.”(손숙)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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