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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콜드케이스] ‘13년째 미궁’ 부모 따라 떠난 휴가지서 사라진 소녀

입력
2020.02.07 04:30
수정
2020.02.07 10:0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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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매들린 맥캔 실종사건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2007년 5월 부모와 떠난 휴가지 포르투갈의 한 리조트에서 실종된 3세 여아 매들린 맥캔. 홈페이지 ‘매들 찾기’ 제공
2007년 5월 부모와 떠난 휴가지 포르투갈의 한 리조트에서 실종된 3세 여아 매들린 맥캔. 홈페이지 ‘매들 찾기’ 제공

옅은 녹색 눈동자와 어깨 선에 닿은 금발, 뽀얀 피부. 세 살배기 여아는 13년 전 유럽의 모든 신문과 방송을 도배했다. 매들린 맥캔은 부모와 함께 떠난 휴가지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매들린이 없어진 직후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 ‘해리포터’ 작가 조앤 롤링 등 유명 인사들이 나서 그의 실종을 적극 알렸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특별기도까지 올리며 매들린의 무사 귀환을 호소했다. 하지만 살아 있다면 청소년으로 훌쩍 자랐을 소녀는 지금껏 부모 품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2007년 5월 3일. 악몽이 시작된 날이다. 39세 동갑내기 영국인 의사 부부 게리ㆍ케이트 맥캔은 첫째 딸 매들린과 두 살 난 이란성쌍둥이 숀ㆍ아멜리를 데리고 포르투갈 남부 해변 휴양지 프라이아 다 루스의 한 리조트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부부는 아이 셋을 재우고 밤 8시30분 숙소에서 100m가량 떨어진 음식점을 방문해 친구 7명과 식사를 했다. 9시5분쯤 리조트에 잠깐 들러 자녀들이 곤히 잠든 모습도 확인했다. 그러나 한 시간 후 숙소로 돌아 왔을 때 침대엔 쌍둥이뿐이었다. 침실 창문은 자물쇠가 뜯어진 채 열려 있었다. 유괴가 분명했다.

지난한 수사와 수색이 시작됐다. 현지 경찰은 소아성애 등 성도착증 환자나 불법 입양단체의 납치 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곧이어 호텔 인근에 사는 영국인 등 리조트에 자주 드나드는 남성 3명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이때만 해도 매들린은 금방 나타날 것 같았다. 그러나 사건은 용의자들이 무혐의로 밝혀지면서 미궁에 빠졌다. 숙소 근처의 폐쇄회로(CC)TV마저 먹통이 된 탓에 사라진 여아의 행방을 추적할 만한 변변한 단서 하나 찾을 수 없었다.

 ◇부실한 초동 수사 

수사가 길어지면서 포르투갈 경찰의 부실한 초동 대응을 질타하는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유괴 사건의 ‘골든타임’인 24시간을 허투루 보냈다는 지적이 가장 컸다. 먼저 출동 시간. 사건 당일 밤 10시15분 신고를 받은 경찰은 밤 11시가 되도록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 판단도 안일했다. 뒤늦게 출동한 경찰은 납치 가능성은 제쳐 두고 잠에서 깬 아이가 길을 잃었을 수 있다며 리조트 주변만 훑었다.

이튿날에도 경찰의 헛방은 계속됐다. 사건 현장인 숙소를 봉쇄해 일말의 증거를 발굴하려는 노력조차 안 했고, 범인의 도주로를 차단하기 위한 도로 검문도 무작정 미루기만 했다. 또 자동차로 1시간30분만 달리면 국경을 넘어 스페인으로 도망할 위험이 있는데도 스페인과 공조 수사 계획은 관심 밖이었다.

그러자 부부가 직접 나섰다. 교황 등 유명인을 만나며 딸의 실종을 전파하는 일에 매달렸다. 부모의 애타는 마음이 효과가 있었던지 포르투갈은 물론, 모로코 스페인 네덜란드 등에서 매들린을 봤다는 제보 전화가 쏟아졌지만 안타깝게도 결정적 증언은 나오지 않았다.

2011년 맥캔 부부가 매들린이 9세로 성장했다고 가정해 만든 사진과 포스터. 홈페이지 '매들린 찾기' 제공
2011년 맥캔 부부가 매들린이 9세로 성장했다고 가정해 만든 사진과 포스터. 홈페이지 '매들린 찾기' 제공

 

 ◇부모가 범인? 자작극 의혹까지 

사건은 5개월 뒤 대반전을 맞는다. 포르투갈 경찰은 세계를 경악게 한 충격 발표를 했다. 맥캔 부부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한 것. 부부가 휴양지에서 빌려 쓴 차량 내부에서 추출한 혈흔이 유전자(DNA) 검사 결과, 매들린의 것과 일치했다는 것이다. 수색견이 호텔방에서 시체 냄새를 감지한 점도 증거로 제시됐다. 경찰은 “부부가 외출에 앞서 딸에게 과량의 수면제를 먹여 실수로 죽이고 허위신고를 했다”고 결론 내렸다. “20여일 후 은닉한 시신을 돌을 가득 넣은 가방에 담아 바다에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론도 내놨다. 엄마인 케이트가 평소 자녀들에게 화를 내거나 이성을 잃은 듯한 행동을 자주 했다는 주변인 진술 역시 곁들여졌다.

자작극 의혹은 곧바로 반론에 부닥쳤다. 부부는 “경찰은 케이트가 자백하면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2년만 감옥에서 살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거래를 종용했다”고 폭로했다.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압박에 경찰이 무리수를 두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차에서 발견된 혈흔이 사실은 체액이고, DNA 정보도 매들린이 아닌 쌍둥이 동생 것일 수 있다는 법의학 전문가 의견까지 공개되자 논란은 금세 수그러들었다.

결국 사건 발생 1년3개월 만인 2008년 7월, 포르투갈 법무장관은 수사 중단을 명령했다.

 ◇7년 만에 수사 재개됐지만 

부모는 포기하지 않았다. 맥캔 부부는 260만파운드(약 40억8,500만원)의 후원금을 종잣돈으로 ‘매들린 찾기’ 온라인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실종아동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면서 영국 정부에 재수사를 요구하는 탄원 활동을 이어 갔다. 동조 여론이 높아지면서 수사 종료 3년이 지난 2011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경찰청에 매들린 사건 재수사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다시 3년 후 매들린의 흔적을 쫓는 작업은 공식적으로 재개됐다.

영국 당국은 새로운 수사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특별수사팀 규모부터 무려 28명이 전담하는 매머드급으로 꾸려졌다. 수사 범위도 넓혀 사건 현장 주변에 거주하는 아동 성범죄자 650명을 전수 조사한 다음, 60명을 최종 용의자로 압축했다. 언론도 가세했다. BBC방송이 매들린 사건을 상세히 재조명한 덕분에 유럽을 넘어 멀리 인도네시아 등에서까지 하루 평균 1,000건에 달하는 제보가 들어왔다. 또 1,160만파운드(약 178억5,000만원)의 예산이 4년간 진행된 재수사에 투입됐다.

단일 실종사건으로는 이례적일 만큼 엄청난 물량 공세에도 매들린의 행적은 끝내 규명되지 않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확인이 불가능했다. 영국 정부는 별수 없이 2017년 이후 담당 수사 인력을 4명으로 대폭 축소하고 6개월마다 전담 조직 운영 연장 여부를 점검받도록 했다. 일단 매들린팀의 존속은 다음 달까지다.

지난해 3월 넷플릭스는 8부작 다큐멘터리 ‘매들린 매캔 실종사건’을 방영했다. 넷플릭스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3월 넷플릭스는 8부작 다큐멘터리 ‘매들린 매캔 실종사건’을 방영했다. 넷플릭스 홈페이지 캡처

 

 ◇매들린 찾기는 계속된다 

두 차례 장기 수사에도 별다른 소득이 없자 실종사건은 그렇게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꺼져 가던 관심의 불씨가 재차 살아났으니 지난해 동영상 스트리밍서비스 업체 넷플릭스가 8부작 다큐멘터리를 공개하면서다. 맥캔 부부는 방송 내용에 객관적 시선이 결여됐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매들린의 존재를 망각에서 끄집어내고 알리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됐다.

특히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포르투갈 전직 경찰 파울로 페레이라 크리스토보아가 폭력 조직에 각종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7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으면서 의혹은 더해졌다. 매들린 수사에 참여했던 그는 줄곧 맥캔 부부 범인설을 주장해 왔다. 2008년에는 책까지 펴내 “매들린은 이미 죽었고 시체는 바다에 버려졌다”고 부부를 겨냥했다.

크리스토보아가 범죄 조직에 발을 담근 사실은 여러 해석을 낳았다. 포르투갈 경찰 수사의 신뢰성에 큰 의구심을 불러일으켰고, 매들린이 유괴됐을 것이란 확신을 갖는 계기가 됐다. 반대로 맥캔 부부에게는 딸이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의 끈이기도 했다.

부부는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여전히 그녀를 찾고 있다. 그녀를 안고 머리에 뽀뽀하던 시절이 너무 그립다”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그즈음 독일에서 15세 소년이 실종 2년 만에 안전하게 돌아왔다는 소식도 힘이 됐다. 부부는 매들린과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를 간절히 기다리며 지금도 실종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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