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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귀향

입력
2020.01.23 18:00
수정
2020.01.28 15:2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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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하루 앞둔 23일 오전 서울역에서 귀성객들이 열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설 연휴를 하루 앞둔 23일 오전 서울역에서 귀성객들이 열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말 썰렁하고 울적한 기분이었다. 내 살과 뼈가 여문 마을이었건만, 옛 모습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

소설가 이문구(1941~2003)의 연작소설 ‘관촌수필’(1977)은 산업화와 근대화로 훼손된 농촌 공동체에 대한 향수, 잊혀 가는 전통을 환기시킨 대표적인 귀향소설이다. 10여년 만에 고향(충남 대천)을 찾은 작가가 처음 목격한 것은 마을을 지키던 400년된 왕소나무가 베어진 자리에 서있는 슬레이트 지붕의 구멍가게. 그는 “이젠 완전히 타락한 동네”라며 상실감을 토로한다.

□ 고향을 소재로 한 소설(귀향소설)은 오랫동안 한국문학의 젖줄이었다. 1940년대의 북간도 체험, 1950년대의 월남 체험, 1960~1970년대 산업화 시기 이농 체험 등 고향 상실과 귀향은 문학사에서 반복적으로 변주돼 다뤄졌다. 김승옥의 ‘무진기행’(1964)에서부터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1973), 김원일의 ‘노을’(1978), 구효서의 ‘늪을 건너는 법’(1991)에 이르기까지, 문학평론가 유보선의 표현을 빌리자면 “귀향에의 의지만큼 한국문학을 풍요롭게 한 경우도 드물”었다.

□하지만 농촌 공동체는 해체된 지 오래고, 급속한 도시화로 더 이상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고향 풍경을 목격하기란 쉽지 않다. 압축 성장의 결과,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전체 인구 중 읍과 동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 비율)은 90.5%(2014년)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47%)의 두 배에 달한다. 아파트와 빌딩 그 자체, 도시 풍경을 고향 풍경으로 느끼는 세대가 늘어났다는 의미다. 지난해 말 기준 수도권 거주자(2,592만 5,799명)는 사상 처음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 이제 ‘귀향’의 의미도 이전 같지 않다.

□ 인구구조와 의식 변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명절에 고향을 찾지 않는 이들도 많아졌다. 한 취업알선 앱이 성인 1,52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번 설에 50.6%는 귀향 의사가 있었고, 49.4%는 귀향 의사가 없었다. 명절이 고향을 찾아 부모, 친지, 친구를 만나 회포를 푸는 시간이 아니라 시나브로 여행과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이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겨운’ (신경림 ‘파장’) 고향과 공동체는 소멸되고 있다. 그렇다고 그곳에만 가면 괴로운 삶을 위로받고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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