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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공익직불제 도입의 의미

입력
2020.01.14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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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ㆍ농촌 정책의 안정 없이는 농업ㆍ농촌의 안정을 이룰 수 없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농업ㆍ농촌 정책의 안정 없이는 농업ㆍ농촌의 안정을 이룰 수 없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말 ‘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농업ㆍ농촌 공익기능 증진 직접지불제도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개정된 법)’로 개정됐다. 직접지불제도는 2005년 도입된 이래 농가 소득을 안정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여 왔으나, 쌀 생산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운용되었고 면적에 따라 지급되어 왔기 때문에 쌀의 공급과잉을 초래하고 면적이 작은 중소규모 농가는 거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따라서 법의 개정이유에 밝혀져 있는 바와 같이 “직접지불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목표가격 변경만 이루어진다면, 과도한 재정지출에도 불구하고 쌀 과잉생산과 가격불안정은 해결되지 않고 중소규모 농업인에 대한 소득보전은 미흡한 상황이 지속될 것”이 우려되므로 법 개정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이번 법 개정은 단순히 쌀 수급균형과 중소농업인에 대한 소득보전만을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큰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의 농업ㆍ농촌 정책을 간단하게나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에 농산물 수입이 자유화되기 이전의 농업정책의 제1목표는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농산물을 차질 없이 생산하는 것이었다. 농산물 수입이 자유화 된 이후에는 값싼 해외 농산물 수입으로 소득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된 농가의 소득을 보전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됐다. 농업정책의 제1목표는 생산자, 즉 농가의 소득을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국민의 농업ㆍ농촌에 대한 환경적, 문화적, 사회적 욕구가 높아지자 소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농업, 농산물 생산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농촌은 빛을 잃고 농업ㆍ농촌의 공익적 가치가 각광을 받게 됐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개정된 법은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갖는다.

첫째, 정부가 농업ㆍ농촌의 “국토환경 및 자연경관의 보전, 생태계의 보전, 농촌사회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의 보전” 등의 공익적 기능을 지원하도록 함으로써 농업ㆍ농촌 정책이 생산자를 위한 소득 안정이나 소비자를 위한 농산물의 생산보다 한 차원 높은 미래세대의 욕구에 부응할 수 있는 길을 텄다.

둘째, 사회적 형평성 논리에 입각하여 농산물 생산자를 옹호하는 견해와 시장경제적 효율성 논리에 따라 농산물 소비자를 옹호하는 견해 사이의 타협점을 마련함으로써 농업ㆍ농촌정책의 새로운 전범을 제시했다.

사실 개정된 법이 지향하는 공익직불제는 유럽의 오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 형평성을 보다 중시하는 진영에서는 정부가 더 이상 농산물 가격에 관여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시장경제의 자율성을 보다 중시하는 진영에서는 농업ㆍ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함양하기 위하여 비효율적인 농가를 지원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형평성과 농업ㆍ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진영과 효율성 및 시장경쟁을 중요시하는 진영이 타협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유럽 농업ㆍ농촌의 안정을 일구어 낸 것이다.

농업ㆍ농촌 정책의 안정 없이는 농업ㆍ농촌의 안정을 이룰 수 없다. 새로운 공익직불제 도입이 우리 농업ㆍ농촌의 안정적 발전의 기틀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태호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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