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김정례(75)씨의 집은 한 몸 겨우 뉘일만한 크기의 작은 단칸방이다. 방 한 켠에 자리한 연탄 난로는 길고 혹독한 겨울을 무사히 지나기 위한 ‘생명줄’과 다름없다. 서울 전역에 진눈깨비가 날리던 지난 6일 방문한 김씨의 간이 부엌은 연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습기에 약한 연탄은 비나 눈을 맞는 순간 ‘불량품’이 되는 탓에 집 바깥에 마냥 쌓아 둘 수 없다.
강원 원주 봉산동에 사는 기초생활수급가정 황매미(68)씨의 집엔 산 중턱에서부터 내려오는 찬바람이 그대로 들이친다. 연탄 보일러와 연탄 난로를 동시에 때야 집 안에 겨우 온기가 돈다. 장당 무게가 3.5kg인 연탄 1장은 6시간 정도를 주기로 갈아줘야 한다.
전사분(101)씨는 보일러 없이 오직 연탄난로 한 대로 겨울을 난다. 연탄의 온기로 바닥에 열을 지피는 방식의 보일러와는 달리 난로는 방 안의 공기만을 데운다. 이불을 아무리 두껍게 깔고 누워도 바닥의 한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전기장판과 같은 기타 난방기구는 전기세 걱정에 언감생심이기도 하지만, 화재 위험 때문에 영 사용이 쉽지 않다. 아무리 난로에 바짝 붙어 있어도 전씨가 내복을 벗을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간밤에 마시려고 받아둔 물이 자고 일어나면 꽁꽁 얼 정도로 집안이 추워요. 오죽하면 숨이 턱턱 막혀도 이불을 얼굴 끝까지 덮고 잠을 청할까. 그나마 몸 데울 수 있는 건 연탄 난로뿐이에요.”

강원 원주 봉산동의 언덕배기 마을에서 15년째 판잣집 생활을 하고 있는 황매미(68)씨는 연탄 없이 겨울을 버틸 수 없다. 기초생활수급비 20만원과 노령연금을 합해 한 달 생활비가 50만원이 채 안 되다 보니 그 흔한 기름이나 가스는 꿈도 못 꾼다.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에서 20년 넘게 홀로 살고 있는 전사분(101)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이상고온 현상이라지만 그의 방엔 칼바람이 들이친다. 부실한 창문과 문틈으로 한기가 파고들고 바깥 소리가 그대로 전달될 정도로 얇은 벽은 단열 기능이 거의 없다. 전씨는 “이런 집에선 한여름만 지나면 금세 추워진다”며 “2월이면 겨울이 다 지났다고 하는데 5월까지도 연탄을 때야 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마을에 사는 950여가구 중 절반 이상이 전씨처럼 연탄에 의지해 겨울을 난다. 서울연구원의 ‘2013년 연탄사용가구 실태조사’에 따르면, 10가구 중 8가구 이상이 무허가 건물이다. 판자 또는 천막 지붕에 출입문은 얇고 창문 틈이 벌어져 외풍이 심하다. 이들에게 연탄은 1년 살림을 지탱하는 ‘생명줄’과 다름없다. 재개발 사업이 수년 째 답보 상태여서 연탄에 의지한 삶은 당분간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최근 4년 사이 매년 100원씩 오른 연탄을 노란색 ‘금(金)탄’으로 표현한 그림.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의 한 중학생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연탄값을 올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연탄 사용 가구 중 대다수는 주거환경이 열악해 연탄을 충분히 쌓아둘 적재 공간이 충분치 않다. 아무리 많이 들여봤자 100장에서 200장 남짓이 전부다. 약 한달 정도 쓰는 양이다.
지붕 딸린 창고가 없는 가정은 뚜껑을 여닫을 수 있는 고무 대야 안에 켜켜이 넣어두는 등 차선책을 택한다.
 ◇월평균 난방비 7만원대→12만원대 ‘훌쩍’ 그래도 ‘오직 연탄뿐’ 

‘겨울철 생존 수단이 ‘오직 연탄뿐’인 가구는 전국에 10만에 이른다. 연탄은 그나마 가격 부담이 적어 겨울을 나는 소외계층의 버팀목이 되어 왔지만 최근 5년 사이 무려 70% 이상 가격이 급등한 탓에 연탄은 더 이상 ‘착한’ 연료가 아니다.

올해 연탄 한 장의 가격은 도매가 기준 639원. 2015년 374원이던 것이 해마다 100원 가까이씩 올랐다. 여기에 150원가량의 배달료(평지 기준)가 붙으면 장당 800원, 차량이 접근하기 힘든 가파른 산동네나 도서 벽지의 경우 배달료가 배로 불어나 장당 1200원까지 치솟는다.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에 따르면 연탄 사용 가구 평균 면적은 약 33~50㎡(약 10~15평). 이 정도 면적의 가정에서 하루 소비하는 연탄은 최소 5장, 한 달이면 약 150장이다. 800원을 기준으로 할 때 한 달에 12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연탄을 쓰는 가구의 월 생활비가 평균 30만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난방비로 지출하는 비용만 생활비의 40%를 넘는 셈이다.

연탄 가격 폭등의 원인은 정부의 ‘화석연료 감축’ 계획이다. 2015년까지는 서민계층의 생활 안정을 위해 가격을 생산원가 이하로 제한하는 대신 생산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해 왔으나 화석연료 감축의 일환으로 2016년부터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줄여 왔고 2020년 폐지할 계획이다.

이같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된 전국 각지의 에너지 빈곤계층 주민들은 지난해 2월 청와대에 손편지를 보냈다. 꾹꾹 눌러 쓴 편지마다 “우리라고 연탄이 쓰고 싶어 쓰겠냐”는 아우성부터 “제발 값을 올리지 말아 달라”는 호소가 담겼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한시적으로 연탄 가격을 동결했지만 가격 안정화를 위한 대책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이 와중에 정부는 7월부터 연탄재에 반입 수수료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연탄재 버리는 비용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기름 보일러로 바꾸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으나 에너지 빈곤계층에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빈말에 지나지 않는다. 기름 보일러를 쓸 경우 한 달 평균 약 1.5 드럼(300L), 30만원어치의 등유가 필요하다. 연탄 가격과 비교하면 2.5배 정도다. 정부의 보조를 받아 설치하더라도 유지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기름 보일러를 사용하다 다시 연탄으로 돌아온 김복녀(79)씨는 “마을에 기름 살 형편이 되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기름을 때더라도 한두 푼 아끼기 위해 냉골에서 벌벌 떠는 일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겐 연탄 말고는 대안이 없다.

강원 원주 원인동에 사는 김복녀(79)씨는 연탄 보일러 밑에 달린 공기구멍을 매번 최대한 막아둔다. 공기구멍이 막히면 상대적으로 연탄이 느리게 타기 때문이다. 연탄 값이 부쩍 오르고 나서부터는 이렇게 연탄을 아낀다.
강원도 원주 봉산동의 골목길. 트럭은커녕 수레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너비라, 이 곳에서 쓰이는 연탄은 모두 사람의 손으로 날라야 한다. 도매가 639원에 배달료가 붙으면 적게는 800원, 많게는 1200원까지도 가격이 뛴다. 황매미씨의 집까지 배달되는 연탄은 장당 1150원. 평균 소비자가보다 350원이나 비싸다.
 
연탄을 쓰는 가구 중 대부분은 온수를 쓸 수 없다. 따뜻한 물로 세수라도 하려면 연탄 난로 위에 큰 대접을 올려 직접 물을 데워야 한다. 뜨거워진 물을 찬 수돗물과 섞어 설거지물로도 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수샤워나 목욕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이상 고온’ 겨울에도, ‘주거복지 사각지대’ 산동네는 변함없이 춥다 

정부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계층 6만여 가구를 대상으로 연 40만원 상당의 ‘연탄쿠폰’을 제공하긴 하나 연간 필요한 수량이 가구당 1,200여장에 달하기 때문에 절반도 충당하지 못한다. 이마저도 차상위계층에 속하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계층 가구는 혜택을 받을 수조차 없다.

전국 31개 지부에서 소외계층 가구에 연탄을 무상 지원하는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의 허기복 대표는 “장기적으로 볼 때 주거환경이 전반적으로 개선되어야 하지만, 당장 겨울철 생존 수단이 ‘연탄’뿐인 이들을 위해서라도 연탄 가격을 안정시킬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허 대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탄 기부마저 해마다 줄고 있다”며 “보통 1월 중순이면 기부가 끊기는데, 일교차가 큰 5월까지 연탄이 쓰인다는 것을 고려해 도움의 손길이 잦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주=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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