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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너무 일찍 나타난 ‘그 사람’

입력
2020.01.07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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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활동 당시의 양준일과 최근 JTBC에 출연한 양준일씨. 한국일보 자료사진∙JTBC 제공
1990년대 초반 활동 당시의 양준일과 최근 JTBC에 출연한 양준일씨. 한국일보 자료사진∙JTBC 제공

‘탑골 GD(지드래곤)’ 양준일이 화제다. 1991년 ‘리베카’로 데뷔한 재미동포 가수 양준일은 당시엔 생소했던 음악과 춤을 선보였으나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바람에 대중적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그랬던 그가 복고 콘텐츠를 유통하는 유튜브 채널 ‘온라인 탑골공원’을 통해 30년 만에 부활했다. 감정 가는 대로, 때론 흐느적거리고, 때론 힘있게 움직이는 그의 춤에 10대들은 “지금 봐도 세련됐다”며 환호성을 보내고 있다. 아무도 그에게 노랫말을 써주려 하지 않아 서툰 한국말로 써 내려간 가사는 진솔한 사랑의 감정을 담았다고 재평가 받고 있다. ‘시간여행자’라는 별칭은 너무 일찍 나타나 시대가 알아보지 못했으나 시간이 흐른 뒤 재평가 받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 시대를 너무 앞서가 비극적 운명을 맞는 경우는 다른 분야에도 많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무너진 과거 세계 1위 휴대폰업체 노키아가 그런 경우다. 노키아가 기술 혁신을 외면했던 건 아니다. 1996년 내놓은 시제품은 이메일과 검색 기능을 갖춰 오늘날의 스마트폰과 유사했지만, 당시에는 와이파이 같은 무선 통신망이 구축되지 않아 실용화할 수 없었다. 지금은 대세가 됐지만 20도 이하 소주도 1990년대 초반 처음 출시됐을 때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 사법부에선 소수의견이 그런 경우다. 하급심 판결문과 달리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는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함께 기재된다. 다수의견은 대법원을 대표하는 법정의견이지만, 미래를 예고하는 건 소수의견이다. 지금은 무의미한 반대이고 소수의 목소리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수의견이 될 수도 있다. 실제 JTBC가 2013년 헌법재판소 판례에서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으로 바뀔 때까지 걸린 시간을 분석했더니, 평균 7.3년으로 조사됐다.

□ 소수의견이 시대 흐름을 바꾸고 사회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을 돌아 보면 탄핵으로 몰락한 보수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기는커녕 혁신의 발걸음도 떼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다. 생명력이 소진된 운동권 세대의 영향권에서 못 벗어난 진보는 2030세대에게 ‘진보 꼰대’ 소리를 듣는 처지다. 뒤늦게 인정받고 박수받는 것은 개인으로선 참 불운하고 불행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정치권에는 양극화 정치, 기득권 정치를 넘어설 양준일 같은 시간여행자가 절실해 보인다.

김영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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