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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 한다면

입력
2020.01.02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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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 첫날인 1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새해 첫 일출을 보고 있다. 부산=뉴시스
2020년 경자년(庚子年) 첫날인 1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새해 첫 일출을 보고 있다. 부산=뉴시스

2018년 추석 직후 이 칼럼을 통해 소개했던 한 중소기업 임원을 작년 말 다시 만났다. 자동차 부품 재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그는 당시 일거리는 줄고 인건비 부담은 날로 늘어나고 있지만, ‘버티고 또 버티면’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사방을 뛰고 있다고 했었다. 경쟁사들이 쓰러져야 사는 생태계에서 버티는 것을 희망으로 여겼다. 하지만 사람을 줄이고 일의 속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버텨봤지만 장기 경기 부진에 빚만 더 늘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회사는 결국 버티지 못했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그는 작년 중반부터 생산량의 80%를 베트남 업체에 주문생산 방식으로 위탁했다고 털어놨다. 물류 비용 부담이 늘어나지만 인건비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베트남 실적에 따라 나머지 20%도 전부 옮기는 것을 고려한다고 했다.

버틴다는 단어에는 힘들다는 의미가 녹아있다. 지난해 우리 경제도 어찌 보면 버텨내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잘 버텼다는 말은 아니다. 2.5~2.6% 성장률을 달성하겠다던 정부 다짐은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해 470조원이 넘는 세금을 쏟아 넣고도 2% 언저리에 그치며 지켜지지 못했다. 각종 경제 지표에 ‘최악’, ‘최장기 감소’, ‘최저’ 등의 표현이 붙었던 점까지 더하면 칭찬할 부분은 없어 보인다. 경기 부진 속에 한국을 탈출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았으니 더 그렇다. 그나마 미중 무역갈등, 일본 수출규제, 세계경기 악화, 반도체 가격 급락 등에 맞물려 스러질 듯 하다 근근이 버텨왔다고 평가하고 싶다.

작년 말 생산ㆍ소비ㆍ투자가 모두 상승하면서 경기 회복이라는 반등의 계기를 기대할 수 있는 점은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통계청 관계자가 “내년 상반기나 1분기쯤에는 반등할 걸로 생각하는데 폭이 문제”라고 말했으니, 적어도 작년보다는 더 많은, 혹은 작년만큼 버틸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여겨진다. 또 속을 수도 있겠지만, 정부가 달성하겠다고 제시한 내년 성장률 전망 2.4%를 다시 한번 믿어보고 싶다. 매년 그리고 역대 정부마다 하겠다던, 그래서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로 여겨지는 투자활성화, 혁신(개혁), 일자리 확대, 경제 체질 개선 등도 올해는 성과를 보였으면 한다.

새해가 어김 없이 찾아오고 지난해의 어려움 속에 올해 성장의 열매에 대한 희망을 적다 보니, 성장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국민들에게 분노와 짜증만 안겨준 정치권이 떠오른다. 화합과 통합은 단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고 분열과 대립, 갈등만 증폭시켜온 여의도 모습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서다. 경기 부진이라는 어려움에 질려 한국을 떠나는 기업들이 늘어나도, 새로운 혁신 산업이 기존 규제에 막혀 성장하지 못해도 오직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했던 그들이다. 2011년 산업계의 요구로 마련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발법)조차 ‘나 몰라라’ 해 10년 가까이 표류하게 한 곳이 여의도다. 서발법 하나가 우리 경제를 크게 도약시키는 법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9년이나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여야를 불문하고 경제에는 관심이 없다는 징표라고 경제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경제ㆍ민생 법안에는 ‘식물’이 되고 자신들의 밥그릇과 관련되는 사안엔 ‘동물’이 되는 국회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걸핏하면 민생을 챙겨 버팀목이 되겠다고 말하면서도 민생보다는 표만 좇는 여의도 금뱃지들을 향한 국민의 신뢰는 없다. 그것마저 누가 더 신뢰를 잃었는지는 계산하는 게 정치권의 속성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도 새해 희망을 이야기 한다면, 이런 국회를 더 이상 견뎌내지 않아도 될 기회가 왔다는 점이다. 다행히 올해는 총선을 치르는 해다.

이대혁 정책사회부 차장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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