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읽어본다, SF] 대도시 문제를 해결할 ‘접는 도시’… 중국 현실을 꼬집어

입력
2019.12.06 04:40
22면
0 0

 ※ 과학소설(SF)을 문학으로, 과학으로, 때로 사회로 읽고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격주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21> 하오징팡 ‘접는 도시’(‘고독 깊은 곳’ 수록)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속 도시가 뒤집히는 장면.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속 도시가 뒤집히는 장면.

도시를 접을 수 있을까. 인구 8,000만 명이 부대끼며 사는 미래의 베이징. 중국 정부는 이 메갈로폴리스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자 기발한 발상을 시도한다. 도시를 접었다 폈다 하는 세 공간으로 나누고, 사람을 나눠 배치하기로 한 것이다. 가장 넓은 1공간 500만명, 2공간 2,500만명, 3공간 5,000만명.

이 세 공간은 시간도 나눠 쓴다. 500만명이 살아가는 1공간이 펴지는 첫 날 24시간 동안 뒤집힌 2, 3공간에 살아가는 7,500만명은 수면 가스에 취해 강제로 자야 한다. 2,500만명의 2공간이 펴지는 시간은 다음날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16시간. 40시간 동안 잠들어 있던 3공간 5,000만명에게 허락된 시간은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달랑 8시간뿐이다.

짐작하다시피, 1공간과 3공간의 차이는 크다. 500만명이 살아가는 1공간은 인공과 자연이 어우러진 저밀도의 교외 같은 공간이다. 반면에 5,000만명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3공간은 한 사람에게 겨우 한 몸 누일 수 있는 공간만 허락되는 고밀도의 닭장 같은 곳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허락된 여덟 시간의 짧은 시간 동안 베이징에서 8,000만명이 내놓는 쓰레기를 처리하면서 살아간다.

이 ‘접는 도시’는 뜻밖에도 골치 아픈 여러 문제를 해결한다. 우선 한정된 땅덩어리에 많은 인구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중국과 베이징을 지배하는 권력을 가진 상류층 500만명에게 안락한 1공간을 제공하니 만족스럽다. 더구나 2, 3공간의 7,500만명을 아예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격리할 수 있으니 계층 갈등도 예방한다.

가장 중요한 실업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5,000만명을 거대 도시가 내놓는 쓰레기 처리에 몰두하게 하는 방식으로 ‘공공 일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임금도 푼돈이면 족하다. 그들에게 허락된 여덟 시간 가운데 쓰레기 처리장에서 일하는 시간을 빼고 나면, 다시 수면 가스에 취할 때까지 돈을 쓸 시간은 거의 없다.

어떤가. 기발하거나 끔찍하거나! 이 ‘접는 도시’는 30대 중국 작가 하오징팡(郝景芳)이 창조한 가상의 공간이다. 3공간에서 희망 없이 쓰레기나 처리하며 살아가던 인물 라오다오는 노래에 재능 있는 딸아이의 유치원 등록비를 마련하고자 목숨을 걸고 1공간으로 잠입을 시도한다. 땅이 뒤집히는 순간에 2공간을 거쳐서 1공간으로 넘어가는 박진감 넘치는 순간은 소설 읽는 재미를 배가한다.

하오징팡은 이 작품(‘접는 도시’)으로 2016년 권위 있는 SF 문학상 휴고상을 받았다. ‘접는 도시’를 비롯한 하오징팡의 소설 열 편이 수록된 ‘고독 깊은 곳’은 이 작가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책이다. 중국 SF 작가 가운데 “가장 섬세한 문장”을 쓴다는 평에 걸맞게 아름답고 섬세하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SF의 설정을 빌려 중국의 현실을 직시하는 30대 작가의 고뇌다. ‘감시’로 대표되는 조지 오웰(‘1984’)과 ‘쾌락’으로 상징되는 올더스 헉슬리(‘멋진 신세계’)의 디스토피아가 뒤섞인 중국의 현실을 작가가 SF로 어떻게 비틀어 비판하는지 살펴보라. 이 책에 실린 다른 단편 ‘현의 노래’ ‘화려한 한가운데’ ‘마지막 남은 용감한 사람’을 지금 홍콩 시민이 어떻게 읽을까.

올해 만난 한국과 중국의 두 여성 SF 작가가 겹쳐 보이는 것도 흥미롭다.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의 김초엽과 하오징팡 모두 아픈 현실을 따뜻한 상상력으로 빚어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새 작품을 기다리는 SF 작가의 목록 맨 앞에 두 작가의 이름이 쓰여 있다.

그나저나 3공간에서 1공간으로 넘어간 라오다오는 어떻게 되었을까. 작가의 바람대로, 이 기막히고 끔찍한 ‘접는 도시’ 이야기가 장편으로 새롭게 쓰이길 기대해 본다.


 고독 깊은 곳 

 하오징팡 지음ㆍ강초아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416쪽ㆍ1만4,000원 

강양구 지식 큐레이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