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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미얀마의 건조지에서

입력
2019.07.31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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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아 농사를 짓지 못하고 기다리는 경작지.
비가 오지 않아 농사를 짓지 못하고 기다리는 경작지.

쏟아붓던 장맛비가 마지막 자락을 남겨두고 있는 모양입니다. 살짝살짝 구름이 보이고 그 빛깔이 밝아지니 마음도 함께 밝아집니다. 여는 때 같았으면 덥고 습하여 투덜거릴 법도 한데 너무 늦지 않게 내려준 비도 고맙고, 큰 피해 없이 그쳐 준 비도 고맙고 빨리 소멸해 준 태풍도 고맙습니다. 올해는 겨울도 봄도 몹시 가물어 수목원의 아름다운 봄 풍경에 한몫하던 산철쭉 꽃이 제대로 피지도 않고 바로 시들어 떨어져 안타깝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장마가 시작되었다는데도 비가 내리지 않았을 때는 나무들에 관수라도 해야 하나 초조하기도 했습니다. 예측하기 어려워진 날씨 탓에 우리도 힘겹지만, 말없이 버티고 있는 풀과 나무들, 심지어 매미나방처럼 대발생을 하여 걱정을 안겨주는 곤충들까지 뭇 생명들이 다 어려움을 겪는 듯합니다.

그래도 내려준 비가 더 고맙고 다행이다 싶었던 것은 얼마 전 미얀마 출장에서의 경험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몇 년간 사막화되어 가는 건조지에 나무를 심는 등 복원을 지원해 성공한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미얀마는 덥고 습한 기후에 열대식물이 자라는 곳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곳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건조지가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바다와 다소 멀리 떨어진 곳에 락히네(Rakhine) 산맥지대의 비그늘(Rain shadow)이 생겨 강수량이 적어 건조지가 된 곳이지요. 복원 현장으로 가는 길에는 마을과 야자나무를 경계로 한 널찍널찍하고 네모반듯하게 만들어진 경작지들이 많이 보였는데 아무것도 키우지 않는 빈 땅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 지역은 일 년에 두 달 남짓 우기가 오는데, 그때 내린 비를 이용하여 땅콩과 같은 작물을 농사짓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가 우기임에도 며칠 비가 오지 않아, 최소한의 수분도 공급되지 않아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상가상 토양이 햇빛에 오래 드러나면 그나마 수분마저 증발하여 아무것도 심을 수 없는 건조지로 변하며, 결국 농민들은 땅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 숲을 경작지로 바꾸어 가는 악순환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산림지원사업으로 숲으로 복원되어 가는 만들어가는 건조지.
우리나라 산림지원사업으로 숲으로 복원되어 가는 만들어가는 건조지.

기후변화로 인한 예측할 수 없는 날씨들은 이렇게 임계점에 서 있는 환경이나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삶의 터전과 방식을 잃을 만큼 파장이 크다는 사실이 눈앞에서 증명되고 있었습니다. 알고는 있었으나 직접 보고 있노라니 새삼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고대문명의 발상지이며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였던 아랄해 면적의 75%가 감소하며 주변이 건조지로 변해가고 유례없는 고온으로 만년설들이 녹아 내리는 등 우리 곁에 이미 맞닥뜨려 있는 위협들은 이 말고도 얼마나 많을까요.

우리는 세계의 건조지에 척박한 국토를 숲으로 일군 우리 기술을 나누는 자랑스러운 일도 하고 있고, 작게는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 줄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지만 지구생태계의 균형이 깨져가는 지금 너무 안이하며 소극적이고 미약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마의 끝자락에서 새삼 제때 내려준 비가 감사합니다. 초록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생각하고 목록을 만들어 하나하나 실천해보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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