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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그림ㆍ침대매트까지… 도대체 빌려 쓸 수 없는 게 뭐야?

입력
2016.06.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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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소비하기보다 ‘빌려 쓰기’에 지갑을 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집도 전세, 차도 리스인데 더 싸다면, 편하다면, 무엇보다 빌려주기만 한다면 꼭 ‘내 것’을 만들 필요가 있냐는 거다. 자고 일어나면 새 모델, 새 디자인, 새 사양이 출현하고, 내 ‘헌 것’에 무서운 속도로 감가상각이 발생하는 예측불가의 시대. 저성장, 취업난, 고용불안, 치솟는 주거비로 소비에 뒤따르는 책임과 의무조차 버거운 시절. 결코 원하는 만큼 가질 수도, 영원히 ‘내 것’일 수도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우리는 단지 ‘소유가치’에 천착했던 삶에 결별을 고한다.

최소 비용으로 물건의 효용만을 누릴 전략으로 적잖은 이들이 택한 것은 대여 서비스, 소위 렌털이다. 우선 사들인 뒤 할부상환에 허덕이기보단, 비교하고 따지고 빌리고 써보고 “내게 정말로 긴요한 물건인가”를 고심한다. 경기 침체 속에서 개미처럼 긁어 모으고 아끼는 ‘플랜z’ 시대의 새 소비공식이기도 하다.

따져보고, 써보고, 구매는 마지막

KT경제경영연구소는 2011년 19.5조원 규모였던 국내렌털시장이 2016년 25.9조원 크기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중 개인 및 가구용품 시장의 비중은 8.5조원(2011년) 규모에서 11.4조원(2016년) 수준으로 5.7%포인트 커질 것으로 추산했다. 기업 등에서 장기렌털하는 장비(9조원 규모)보다 개인들이 빌려 쓰는 물품 시장의 규모가 더 크단 얘기다. 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를 앞서 겪은 일본은 이미 2009년 461.5조원대였던 렌털 시장이 2013년 669.9조원으로 무섭게 성장했고, 이중 561.1조원(2013년 기준)대가 개인들의 렌털 거래였다.

“이용가치만을 취하겠다”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열기 위한 업계의 구애경쟁이 뜨거워지며, 대여 가능 물품도 늘어났다. 빌려 쓰는 소비문화가 꽤 오래 자리잡은 정수기, 유아용품은 물론 컴퓨터, 가구, 게임, 생활가전, 음향기기, 의류, 잡화, 레저용품, 의료용품, 악기, 그림, 장난감, 도서, 매트리스 등. 빌려 쓸 수 없는 물품을 찾는 일이 더 어려울 정도다. 한국렌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2만4,000여 곳 렌털 업체가 성업 중이다.

직장인 강경식(36)씨는 “의도치 않았는데도, 어느새 둘러보니 음식물처리기, 정수기 등 적잖은 가전제품을 모두 렌털로 쓰고 있다”고 했다. 최근 가장 새롭게 시도한 렌털은 거실 벽에 건 ‘작가 그림’. 그는 “아내가 그림에 관심이 많은데 실제 작가 그림을 사서 걸려면 아무리 작은 그림도 200만~300만원의 거금이 필요하고 영원히 소유해야 한다는 부담에 살 생각은 하지 못했다”며 “월 3만 9,000원 정도에 대여해 걸어봤는데, 술 한 번 마시는 횟수를 줄여 원하던 작가 그림을 일시적으로 소유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했다. 몇 달쯤 대여해 거실에 걸어 본 뒤, 그래도 마음에 들면 구입하고, 아니라면 다른 그림을 빌리거나 대여를 중단하는 방식이다. ‘영원한 내 것’을 고르는 기준과 과정이 그만큼 까다로워진 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나만의 것? 짐 되기 일쑤더라

꼭 필요할 것 같아 산 물건들이 ‘짐’이 되기 십상이라는 경험칙도 대여에 관심을 돌리는 또 다른 이유다. 강씨는 “음식물처리기도 그렇고 정수기도 모두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 계속 좋은 물건들이 나오는데 무턱대고 사서 쓰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짐만 되더라”고 했다.

잔뜩 쌓인 물건에 포위된 삶을 경계하는 ‘미니멀라이프’의 열풍과 1인 가구의 증가도 ‘빌려 쓰는 문화’ 형성에 일조한다. 취업준비생 박진만(28)씨는 해마다 여름이면 각종 음악페스티벌을 즐겨 찾고, 이때마다 행사장에서 캠핑을 즐기지만 값비싼 장비를 사는 데는 한번도 돈을 써본 일이 없다. “캠핑과 축제를 즐기고는 싶지만 캠핑 장비를 갖추려면 100만원은 잡아야 하는데 좀 사치스럽게 느껴지죠. 무엇보다 혼자 사는 1인 가구라서 그걸 둘 공간도 없어 늘 대여해요. 캠핑뿐만 아니라 이렇게 기초자본이 많이 드는 레저는 렌털로 이용하는 게 당연히 유용하다고 봐요.” 이런 참가자들을 위해 아예 음악페스티벌 주최 측이 캠핑 장비 렌털 부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박씨는 “집도 좁은데 많은 물건을 사들이는 것 자체가 갈수록 무지하게 느껴진다”며 “일상에서 매일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여하고 공유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관리 부담, 선택 피로 던다

물건을 관리하고, 보수하는 부담을 업체 측이 대신 진다는 점도 렌털의 매력이다. 2011년 매트리스 렌털을 시작해 업계의 이목을 끈 코웨이는 가정에서 매트리스 청소가 골칫거리로 여겨진다는 점을 파고 들었다. 주기마다 방문해 오염도 측정, 청소, 진드기 제거 등을 해준다는 설명에 이용자는 2011년 8,000명에서 지난해 26만5,000명으로 늘었다.

바쁜 일상에서 선택 피로를 호소하는 이들에게 전문가를 보내 상품을 설명하고, 안내하고, 추천하는 큐레이션에 공들이는 경우도 있다. 그림 렌털 스타트업인 오픈갤러리는 큐레이터들이 직접 이용자의 취향을 분석해 작품을 추천하는 아이디어로 지난해 300% 성장했다. 오픈갤러리 박의규 대표는 “젊고 역량 있는 신진작가들도 많고, 미술에 관심 있는 분들도 많은데 이 사이에서 구매가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분석하니 ‘내가 잘 모르는 것에 큰 돈을 쓰고 싶지 않다’는 심리적, 경제적 장벽이 컸다”며 “렌털의 경우 갤러리의 흰 벽에 걸려있었을 때는 맘에 들었는데 집에 걸어보니까 별로거나 가족이 싫어할까 걱정이라는 등의 부담이 덜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스타트업 기업인 원투웨어 역시 ‘골라주고, 추천하는’ 서비스를 내걸고 옷을 빌려준다. 월정액을 내면, 스타일리스트가 취향을 분석해 고른 브랜드 여성 정장 등 3벌을 배송해주고, 원하는 횟수만큼 교환해준다. 원투웨어 관계자는 “주로 간호사 등 낮에 유니폼을 입고 생활하는 직장인들이 출퇴근용으로 많이 찾는다”며 “지난해 9월 런칭해 올해 상반기까지 회원 수와 매출이 300% 늘었다”고 했다.

‘소유‘는 시대 맞지 않는 삶의 양식

하지만 업체나 상품에 따라 이 유지관리, 상담, 보수, 세척을 명목으로 책정된 렌털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경우도 있어, 대여 전에 의무 약정 기간과 계약 조건 등을 꼼꼼히 확인해 두는 게 좋다. 특히 정기적인 방문 서비스를 앞세운 가전제품 등 장기 렌털의 경우, 이 서비스 비용 때문에 렌털비의 총합이 물건의 원가를 뛰어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 서비스를 받길 원하는지, 물건을 직접 사는 게 현명할지, 제3의 선택을 할지 등을 사전에 검토해야 하는 까닭이다.

미니멀라이프와 맞물려 ‘빌려 쓰는 일’은 당분간 가장 영리한 21세기적 무소유 방식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빌린 정장을 입고 입사 면접을 봤다는 박혜영(29)씨는 “몇 년 전만 해도 ‘남들이 입었던 옷을 어떻게 입어’하는 생각이 컸는데, 갈수록 거부감은 줄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삶에 관심이 간다”고 했다. 결국 소유는 “모든 것이 휙휙 바뀌는 풍토에 적응하기에는 너무 느려터진 생각”(제러미 리프킨)이 될까. 아주 오래된 질문이 낯선 표정으로 다가온다. 소유할 것이냐, 존재할 것이냐, 빌릴 것이냐.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한소범 인턴기자

빌려 쓸 수 있는 다양한 물품들

자료: 한국렌탈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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